Chapter 29: 철의 가디언
엘레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했다. 그녀의 뇌에 심은 신경 씨앗이 자리를 잡으며 명령 체계를 완전히 재편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떨림을 무시하고 벙커 02의 중앙 콘솔로 다가갔다. 델타의 기억을 통해 대략적인 구조는 파악했지만, 직접 시스템에 접속해 확인해야 할 핵심 자산이 남아 있었다.
화면 위로 수많은 데이터가 빠르게 흘러갔다. 실험 기록과 유전자 지도 사이에서 이질적인 아이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성체 남성 보관소'라는 이름이 붙은 구역이었다. 나는 그 메뉴를 클릭했다. 보안 승인을 요구하는 창이 떴지만 엘레나의 관리자 코드를 입력하자 금방 잠금이 풀렸다.
데이터베이스에는 현재 보관 중인 실험체들의 상태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벙커 02의 과학자들은 외부에서 생포하거나 구출한 남성들을 이곳에 가두고 실험을 진행해 왔다. 그들은 인류 재건이라는 미명 아래 남성들을 냉동하거나 약물로 가사 상태에 빠뜨려 보관했다. 나는 화면에 표시된 좌표를 확인했다. 연구 구역보다 더 깊은 지하 5층, 중무장된 격리 구역이었다.
나는 리더 델타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소총을 고쳐 쥐며 내 옆에 섰다. 하이브리드 대원들도 내 의지에 반응하며 비행 장비를 점검했다. 엘레나를 그 자리에 버려둔 채 지하 5층으로 향하는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승강기가 하강할수록 공기는 점점 더 차갑게 식어갔다.
강철 문이 열리자 거대한 전시장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벽면을 따라 수백 개의 원통형 유리관이 줄지어 서 있었다. 유리관 안에는 차가운 가스 속에서 잠든 남성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의 몸에는 각종 호스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생체 신호를 알리는 액정만이 주기적으로 깜빡였다.
나는 유리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실험체들을 살폈다. 어떤 남성은 군복을 입은 채였고, 어떤 이는 앙상하게 마른 민간인의 모습이었다. 벙커 02의 과학자들은 이들의 유전자를 추출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내성을 시험하며 조각내 사용했다. 그들에게 이 남성들은 인류의 희망이자 동시에 소모품일 뿐이었다.
델타가 내 곁으로 다가와 유리관 하나를 가리켰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이들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기술적 재료에 불과했다. 나는 유리관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과 유리의 감촉이 전해졌다. 이들을 해방해주고 동료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남성은 오직 나 하나로 족했다. 이들은 내 제국의 수호자가 될 다른 형태의 재료가 되어야 했다.
나는 메인 제어반에 신경 촉수를 연결했다. 벙커 01에서 가져온 생체 에너지와 내 몸속의 바이러스 농축액을 시스템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유리관으로 전달되는 배양액의 색깔이 탁한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실험체들의 뇌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부위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의 기억과 자아는 순식간에 지워지고, 오직 본능적인 공격성과 나에 대한 절대적인 유동성만이 남게 될 것이었다.
배양액에 섞인 내 유전자 정보가 그들의 세포 하나하나를 파고들었다. 잠들어 있던 남성들의 신체가 기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며 피부 뚫고 솟아올랐다. 골격은 재조립되어 인간보다 두 배 이상 거대한 체구로 변모했다. 유리관 안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타격음이 조용한 지하 공간을 채웠다.
어떤 남성은 등 뒤로 날카로운 뼈 가시가 돋아났고, 어떤 이는 손가락 끝이 단단한 합금처럼 변했다. 나는 그들이 인간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던지도록 유도했다. 그들은 이제 사람이 아니라 내가 부리는 거대 보초병, '가디언'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가장 거대한 체구를 가진 유리관 하나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깨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안에서 시커먼 피부를 가진 괴수가 쏟아져 나왔다. 3미터에 달하는 거구는 온몸이 울퉁불퉁한 근육질 장갑으로 덮여 있었다. 놈은 바닥을 짚으며 일어섰다. 눈에는 지성 대신 붉은 안광만이 감돌았다.
가디언은 내 앞에 멈춰 서더니 거대한 몸을 숙여 복종의 예의를 갖췄다. 나는 놈의 머리에 손을 얹어 내 의지가 완벽하게 각인되었음을 확인했다. 뒤이어 다른 유리관들도 차례로 부서졌다. 수십 마리의 가디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내 뒤에 늘어섰다. 하이브리드 대원들이 기교와 속도를 담당한다면, 이들은 제국을 지키는 단단한 방패이자 압도적인 힘의 상징이었다.
나는 새로 만들어진 가디언 부대에게 벙커 외부 경비를 명령했다. 그들은 육중한 발걸음을 옮기며 벙커 02의 출입구와 주요 통로로 흩어졌다. 이제 벙커 02는 단순한 실험실이 아니었다. 어떤 외부 세력도 뚫을 수 없는 완벽한 요새가 되었다. 가디언들은 지치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으며 오직 내 명령만을 기다리는 기계적인 생명체로 제 자리를 지켰다.
다시 연구 구역으로 돌아오자 엘레나가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디언들의 모습을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과 마주치자 즉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심어진 신경 씨앗이 그녀를 내 충직한 노예로 길들여 놓은 덕분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다."
나는 엘레나에게 명령했다. 벙커 02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근거리 통신망을 이용한 광범위한 네트워크 제어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벙커 01의 모녀 코어와 이곳의 복제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학교 요새의 생체 에너지와 벙커들의 기술력을 하나로 묶어야 했다.
엘레나는 떨리는 손으로 홀로그램 키보드를 조작했다. 그녀는 내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벙커 01에 있는 민아와 그 어머니의 신경망 신호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이어 벙커 02의 복제 엔진과 인공 자궁 설비들이 동기화되기 시작했다. 두 거점 사이의 거리는 멀었지만, 내가 구축한 은색 거미줄망과 벙커의 전용 통신 채널을 통해 데이터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연결이 완료되자 내 의식은 더욱 멀리 뻗어 나갔다. 학교 요새의 감각이 벙커 01을 거쳐 이곳 벙커 02까지 선명하게 이어졌다.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영역이 내 손바닥 안의 지도처럼 읽혔다. 나는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신경망의 진동을 느꼈다.
지배력의 범위는 이제 단순한 산악지대를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는 인근 도심의 주요 건물들과 생존자 거점들이 붉은 점으로 표시되었다. 나는 복제 시스템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벙커 02의 인공 자궁들이 웅웅거리며 가동되었고, 그 안에서 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생명들이 잉태되었다.
하이브리드 대원들은 천장에 매달려 시스템 안정화를 지켜보았다. 가디언들은 벙커 밖에서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며 성벽처럼 버텼다. 나는 중앙 통제석에 앉아 확장된 제국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학교라는 작은 점이 이제는 도시를 잠식하는 거대한 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엘레나가 조작을 마치고 내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통합되었음을 보고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니터 너머로 깜빡이는 도시의 불빛들을 응시했다. 벙커 01의 생체 배터리들과 벙커 02의 생산력이 맞물리며 제국은 거대한 기계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손가락을 튕겨 도심 방향으로 정찰 드론과 하이브리드 대원들을 추가로 파견하라고 명령했다.
통제실의 대형 스크린에는 학교 요새의 실시간 영상과 벙커들의 상태 수치가 겹쳐서 나타났다. 나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내 신경망이 도시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감각에 집중했다. 수많은 여성이 내 이름을 연호하며 복종하는 환청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배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내 안의 에너지는 더욱 뜨겁게 끓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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