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 무너지는 요새

나는 벙커 01의 중앙 통제실에서 요원 리더 델타의 뇌에 연결된 신경 촉수를 갈무리했다. 그녀의 기억은 이제 내 머릿속에 완벽한 지도로 자리 잡았다. 벙커 01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벙커 02는 이곳보다 훨씬 정교한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방어선이라도 내부자의 열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델타의 정신은 이미 내 의지에 완전히 침식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나를 거역할 수 없는 꼭두각시이자 가장 충성스러운 사냥개였다.

나는 즉시 하이브리드 부대에게 출격 명령을 내렸다. 새롭게 진화한 생체 금속 갑주를 입은 대원들이 내 발치에 엎드렸다. 그녀들의 등 뒤에 달린 은빛 날개는 비행을 준비하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나는 델타를 앞세워 벙커 01의 출구로 향했다. 델타는 멍한 눈으로 내 뒤를 따랐고,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최신식 저격 소총이 들려 있었다. 우리는 벙커 01의 강철 문을 열고 쏟아지는 인광을 뒤로한 채 벙커 02가 숨겨진 절벽 지대로 비행했다.

산맥의 가파른 틈새에 교묘하게 위장된 벙커 02의 진입로가 나타났다.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위치였다. 나는 델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출입문 앞의 생체 인식 장치로 다가갔다. 장치가 붉은 광선을 내뿜으며 델타의 안구와 지문을 스캔했다. 델타가 가진 고위직 승인 코드가 입력되자, 거대한 암반처럼 보이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벙커 02의 방어 체계는 자신들의 정예 요원이 적의 지휘관을 데리고 돌아온 것으로 오판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마자 나는 하이브리드 대원들을 투입했다. 델타의 기억 속에서 파악한 보안 취약점들을 하나씩 찔러 들어갔다. 통로 곳곳에 설치된 무인 가디언 로봇들이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가동되었다. 로봇들은 내장된 기관포로 제압 사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 대원들은 지면을 기어 다니는 느린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벽과 천장을 박차며 공중에서 탄환을 피했다. 생체 금속 발톱이 로봇들의 장갑판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나는 중앙 복도를 가로지르며 벙커 내부를 관찰했다. 벙커 01이 투박한 실험 시설 같았다면, 이곳은 마치 거대한 정밀 기계 공장 같았다. 델타가 열어준 통제 권한 덕분에 나는 무인 방어 포탑들의 전원을 실시간으로 차단했다. 저항하던 경비 요원들은 하늘에서 덮치는 하이브리드 대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원들은 살상보다는 제압에 집중하며 요원들을 무력화했다. 나는 이 벙커의 인적 자원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싶었다.

벙커 02의 깊숙한 지하 4층으로 내려가자 거대한 연구 구역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여성 연구원들이 겁에 질린 채 구석으로 몰려 있었다. 그녀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괴물 같은 대원들과 그 뒤를 따르는 나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대원들에게 그녀들을 포위하게 한 뒤, 연구 구역 중앙에 놓인 거대한 실린더들을 살폈다.

실린더 안에는 투명한 배양액과 함께 수많은 태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단순한 태아가 아니었다. 나는 콘솔의 데이터를 빠르게 훑어 내렸다. 그곳에는 '인공 자궁을 이용한 Y염색체 복원 및 남성 복제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문서들이 가득했다. 벙커 02의 과학자들은 멸망해가는 인류를 재건하기 위해 남성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었다.

데이터를 읽어나갈수록 나는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들의 연구는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비록 자연적인 생식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남성의 신체 구조와 유전 정보를 복제하는 기술력은 경이로웠다. 나는 메인 서버에 내 신경 촉수를 직접 연결했다.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 자료들이 소용돌이치며 내 의식 속으로 흡수되었다. 벙커 01의 생체 에너지와 벙커 02의 복제 기술이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엎드려 떠는 여성 과학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들의 눈에는 공포와 경외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델타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이곳의 수석 연구원, 엘레나를 지목했다. 그녀는 벌벌 떨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녀의 턱을 잡아 강제로 눈을 맞추게 했다.

"너희의 연구는 이제 주인을 찾았다."

엘레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신음만 내뱉었다. 나는 그녀의 뇌에도 미세한 신경 씨앗을 심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지식을 오직 나만을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다. 벙커 02의 모든 시설과 인공 자궁 설비들은 내 제국의 산실로 재편되었다. 이곳에서 태어날 새로운 세대들은 내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더욱 완벽한 하이브리드가 될 터였다.

나는 연구원들에게 지시하여 벙커 02의 통제권을 완전히 이전했다. 생체 금속 대원들은 벙커의 구석구석을 장악하며 남은 저항 세력을 숙청했다. 생포된 여성 과학자들은 즉시 내 하렘의 새로운 일원이자 기술 노예로 등록되었다. 그녀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으나, 곧 내 의지에 지배당하며 기계적으로 장비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벙커 02의 기술력을 흡수하자 내 몸 안의 에너지가 더욱 정교하게 정제되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한 파괴력이 아닌, 생명을 창조하고 변이시키는 근원적인 힘이 느껴졌다. 학교라는 작은 요새에서 시작된 내 영토는 이제 두 개의 거대 벙커를 포함하는 제국으로 진화했다. 나는 복제 설비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엘레나는 내 지시에 따라 인공 자궁의 설정값을 변경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지만, 내 신경 지배 아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령을 수행했다. 벙커 내부에 가득 찬 수백 개의 배양 탱크들이 내 유전자 정보를 받아들여 붉은빛을 내뿜었다. 이전의 불완전한 복제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신인류의 도래였다.

나는 중앙 통제실의 거대한 모니터를 보며 벙커 02의 모든 방어 네트워크를 재설정했다. 이제 이곳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술의 성채가 되었다. 하이브리드 대원들은 벙커 내부의 정밀 기계들과 융합하여 더욱 강력한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피부 위로 흐르는 생체 금속은 벙커 02의 특수 합금을 흡수하며 검은 빛을 띠는 초경질 장갑으로 변모했다.

나는 옥좌에 앉아 엘레나를 내 무릎 사이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저항하지 못하고 내 몸에 얼굴을 묻었다. 벙커 02의 정복은 예상보다 훨씬 큰 수확을 안겨주었다. 인공적인 생명 창조와 정밀 기계 제어라는 두 가지 강력한 날개를 얻었다. 나는 엘레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음 목표를 구상했다. 벙커 02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또 다른 거점들의 좌표가 깜박이고 있었다.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내 군단은 이제 지상의 어떤 괴생명체나 생존자 집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벙커 02의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복제 기술은 내 혈통을 무한히 증식시킬 도구가 될 것이다. 나는 엘레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고, 그녀는 절망과 쾌락이 뒤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기술적 완성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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