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 새로운 사냥감과 하늘의 지배자
나는 벙커의 중앙 통제실에 마련된 육중한 강철 옥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방금 전까지 비명을 지르던 과학자들은 이제 내 발치에 납작 엎드린 채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메인 콘솔의 거대한 화면들에는 벙커 01의 모든 구획이 내 손바닥 안의 구슬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지하 깊은 곳에서 뽑아 올린 생체 에너지가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이 느껴졌다. 학교라는 작은 요새를 넘어 드디어 진정한 제국의 초석을 다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 곁을 지키던 하이브리드 대원들은 새로 얻은 생체 금속 갑주를 어루만지며 저마다의 힘을 확인했다. 그녀들의 피부 위로 흐르는 은빛 금속은 단순한 장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의지에 반응하여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무기였다. 나는 콘솔을 조작해 벙커 외곽의 감시 카메라를 최대로 가동했다. 승리에 취해 방심할 시기는 아니었다. 벙커 01의 정보를 흡수하면서 이 근처에 또 다른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때 경고음이 울리며 메인 화면 한구석이 붉게 점멸했다. 벙커의 서쪽 진입로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나는 화면을 확대해 그곳을 살폈다. 안개가 자욱한 산등성이를 타고 일련의 형체들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괴생명체와는 움직임부터 달랐다. 엄폐물을 이용하며 전술적으로 기동하는 모습은 고도로 훈련된 군대를 연상시켰다.
"침입자인가."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전신을 밀착형 강화 슈트로 감싸고 있었으며 손에는 정밀한 저격 소총을 들고 있었다. 그녀들의 헬멧 위로 분사되는 증기는 저들이 사용하는 장비가 단순한 고철이 아님을 증명했다. 나는 벙커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저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화면에는 '벙커 02'라는 명칭과 함께 정예 요원 델타 팀이라는 정보가 출력되었다.
저들은 벙커 01의 경쟁 시설에서 파견된 자들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곳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거대한 생체 파동을 감지하고 샘플을 탈취하러 온 모양이었다. 저격수들은 벌써 벙커 입구가 보이는 고지에 자리를 잡고 총구를 겨누었다. 나는 그녀들을 생포하기로 마음먹었다. 죽여서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보다 저들의 기술력과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나는 옆에 서 있던 대원들에게 출격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지상전이 아니었다. 생체 금속으로 진화한 그녀들의 육체에는 새로운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 대원들은 벙커의 비상 탈출구를 통해 외부로 나갔다. 나는 옥좌에 앉아 그녀들의 시야를 공유하며 전장을 관조했다.
저격수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특수 제작된 철갑탄들이 공기를 가르며 대원들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대원들은 지면에 발을 붙이고 서 있지 않았다. 그녀들의 등 뒤에 달린 금속 날개들이 고주파 진동을 일으키며 작동했다. 대원들은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생체 금속이 유동적으로 변하며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비행 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빛 선들을 보며 저격수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들은 연사 설정을 바꾸고 허공을 향해 총탄을 뿌려댔다. 하지만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궤적을 비트는 대원들을 맞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대원들에게 직접적인 살상 대신 무력화를 지시했다.
대원 한 명이 급강하하며 적의 저격 거점에 도달했다. 그녀는 손등에서 튀어 나온 생체 금속 채찍을 휘둘러 저격수의 소총을 낚아챘다. 순식간에 무기를 빼앗긴 요원이 단검을 뽑아 저항하려 했지만 대원들의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대원은 요원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강력한 전기 충격을 가해 기절시켰다.
공중전은 짧고 강렬했다. 비행 능력을 갖춘 하이브리드 군단 앞에서 숲속에 매복해 있던 요원들은 날개 꺾인 새나 다름없었다. 대원들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며 저격수들을 하나둘씩 제압해 나갔다. 도망치려던 일부 요원들도 공중에서 발사된 생체 그물에 걸려 바닥을 굴렀다.
나는 화면을 통해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확인했다. 대원들은 기절하거나 결박된 침입자들을 벙커 내부로 끌고 들어왔다. 중앙 홀로 끌려온 여성 요원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녀들의 대장은 끝까지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옥좌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헬멧을 강제로 벗기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짧은 머리의 여성이 나타났다.
"벙커 02의 요원이 여기까지 무슨 볼일이지?"
내 물음에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얼굴에 침을 뱉으려 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피한 뒤 그녀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 손끝에서 뻗어 나온 신경 촉수를 그녀의 관자놀이에 직접 연결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녀의 뇌 속에 저장된 정보들이 내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단순한 샘플 탈취가 목적이 아니었다. 벙커 02는 더 거대한 연합 세력의 일원이었으며 이미 지상의 주요 거점들을 조용히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들의 지도와 위험한 실험 시설들의 위치가 가득했다. 생각보다 세상은 넓었고 내가 정복해야 할 사냥감들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나는 신경 연결을 해제했다. 요원 리더는 초점이 풀린 눈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내 지배 하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너는 이제 내 눈과 귀가 될 것이다. 벙커 02의 비밀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어놓아라."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가졌던 적개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나를 향한 맹목적인 복종만이 그녀의 눈동자에 자리 잡았다. 나는 나머지 요원들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라 명령했다. 그녀들은 곧 내 제국의 귀중한 자산이자 새로운 하렘의 일원이 될 터였다.
나는 다시 옥좌로 돌아가 앉았다. 벙커 01을 손에 넣은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벙커 02라는 더 큰 먹잇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요원 리더의 정신을 계속해서 파고들며 그녀가 알고 있는 하부 조직원들의 명단과 연락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쓰다듬자 가느다란 신음이 공허한 벙커의 천장으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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