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 거대 삼각 지대 (Triangle Zone)

벙커 02의 중앙 통제실은 이제 내 의지의 연장선이었다. 거대 가디언들을 배치하고 시스템 통합을 마친 뒤에도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엘레나를 옆에 세운 채 모니터를 훑었다. 그녀는 내 명령을 받들어 벙커의 광대역 수신기를 가동했다. 벙커 02는 단순한 실험실이 아니라 도심 전체의 통신을 엿듣는 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도심 내에서 주기적인 암호화 신호가 감지됩니다."

엘레나가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녀는 신경 씨앗 덕분에 내 의중을 묻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를 골라냈다. 화면에는 도심 남서쪽 구역에서 발생하는 붉은색 파동이 나타났다. 나는 그 신호의 주파수를 분석하라고 지시했다. 단순한 생존자들의 잡음이 아니었다. 체계적인 군사 규격의 통신이었다.

해독된 데이터 속에서 '발키리'라는 명칭이 튀어나왔다. 엘레나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발키리는 도심의 폐허 속에서 여성 생존자들로만 구성된 정예 부대였다. 그녀들은 과거 군인이나 경찰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버려진 군수 기지의 강화 슈트와 무기를 획득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내 제국이 도심으로 확장되려면 이들처럼 훈련된 전력은 반드시 흡수해야 할 자산이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벙커 01의 모녀 코어에서 생성한 특수 유인 주파수를 방사하라고 명령했다. 벙커 02에서 발신되는 가짜 구조 신호는 발키리 부대가 무시하기 힘든 미끼였다.

"출격 준비를 해라."

나는 대기 중이던 하이브리드 대원들과 가디언들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델타를 포함한 하이브리드 대원들은 비행 장비를 점검하며 벙커의 사출구로 향했다. 거대한 체구의 가디언들도 묵직한 발걸음을 옮기며 지상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적인 살상은 피하고 오직 포위와 무력화에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통제실 의자에 앉아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드론의 영상을 지켜보았다. 도심 외곽의 버려진 공업 단지 근처로 발키리 부대의 장갑 차량 세 대가 접근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강화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전신을 감싼 금속 장갑이 햇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부대원들은 소총을 든 채 경계 태세를 갖추며 차량에서 내렸다.

내 가디언들은 이미 공장 건물의 잔해 속에 매복한 상태였다. 하이브리드 대원들은 구름 위에서 그녀들을 내려다보며 투하 시점을 기다렸다. 발키리 요원들은 벙커 02의 유인 신호가 발신되는 지점을 향해 천천히 발을 뗐다. 그녀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여성이 수신호를 보내자 부대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졌다.

나는 가디언들에게 공격 신호를 보냈다. 3미터에 달하는 거구들이 폐건물의 벽을 뚫고 튀어나왔다. 발키리 대원들은 즉각 사격을 개시했지만, 가디언들의 두꺼운 장갑 피부는 소총탄을 튕겨냈다. 동시에 하늘에서는 하이브리드 대원들이 급강하했다. 그녀들은 은색 거미줄망에서 추출한 와이어를 발사해 여군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지금이다."

나는 엘레나의 제어기를 통해 증폭된 내 생체 파동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벙커의 안테나가 내 의지를 거대한 전자기적인 파동으로 변환했다. 이 파동은 도심 전체로 퍼져나가 발키리 대원들이 입고 있던 강화 슈트의 회로를 직접 타격했다. 강화 슈트는 시스템 오류를 일으키며 일제히 작동을 멈췄다.

여군들의 몸을 감싼 금속 장갑이 거대한 구속구로 변했다. 그녀들은 슈트 안에 갇힌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그녀들의 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미세 진동을 추가로 보냈다. 근육이 경직되고 의식이 흐릿해지는 마비 상태가 군단 전체를 덮쳤다. 총성을 멎었고, 도심 외곽에는 적막만이 찾아왔다.

가디언들은 무력화된 여군들을 짐짝처럼 들어 올렸다. 하이브리드 대원들은 그녀들의 무기를 하나씩 회수하며 주변을 정리했다. 나는 벙커의 보안실에서 이 모든 과정을 만족스럽게 지켜보았다. 포획된 전리품들은 곧 벙커 02의 하역장으로 실려 왔다.

강화 슈트가 강제로 해체되자 발키리의 지휘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머리에 강인한 인상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는 마비에서 덜 깬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의 부하들도 줄줄이 바닥에 꿇려졌다. 나는 통제실에서 내려와 그녀들 앞에 섰다.

나는 지휘관의 턱을 들어 올려 나를 보게 했다. 그녀의 눈에는 분노와 의문이 섞여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끝에서 뻗어 나온 신경 촉수를 그녀의 목덜미에 꽂았다. 요동치던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내 바이러스에 오염되며 초점을 잃었다.

나는 그녀의 신경을 우리 제국의 거미줄망에 새로운 노드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진 도심의 군사 정보와 감시 자산들이 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발키리 부대는 이제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지상군이 될 것이었다. 그녀들은 더 이상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제국의 경계를 지키는 정교한 부품에 불과했다.

"연결이 완료되었습니다."

엘레나가 곁에서 보고했다. 화면 위로 새로운 지도가 그려졌다. 서울 근교의 학교 요새를 정점으로 하고, 서쪽의 벙커 01과 도심의 벙커 02를 잇는 거대한 삼각형 구역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지배하는 영역인 '거대 삼각 지대(Triangle Zone)'가 완성된 순간이었다.

나는 중앙 홀로그램 원탁으로 걸어가 완성된 영토를 내려다보았다. 세 거점을 잇는 거미줄망은 이제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맥동하며 에너지를 순환시켰다. 학교 요새에서는 매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것이고, 벙커들에서는 그들을 무장시킬 기술과 가디언들이 생산될 것이다.

발키리 지휘관은 내 발치에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의 의사를 전했다. 그녀의 부하들도 이미 신경망에 동화되어 무표정한 얼굴로 주위의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나는 벙커 02의 유리창 너머로 어둠에 잠긴 도심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를 지났지만, 내 삼각 지대 안은 전력의 불빛으로 인해 대낮처럼 환했다.

제국의 경계는 확고해졌다. 전력과 식량, 그리고 강력한 군대까지 손에 넣은 나는 이제 멸망한 세계의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었다. 나는 삼각 지대 너머로 보이는 또 다른 붉은 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음 정복지가 내 시선 끝에서 결정되었다. 인류의 잔당들이 숨어있는 지하 시설들과 그들이 가진 마지막 자원들이 내 신경망 속에서 선명하게 읽히고 있었다. 나는 벙커 02의 출입문을 다시 열라고 지시했다.

군단은 멈추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거대 삼각 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에너지가 밤하늘을 찌르듯 솟구쳤다. 델타와 하이브리드 대원들이 다시 비행 장비를 가동하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지상의 가디언들은 육중한 발걸음으로 도심의 아스팔트를 짓이기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한층 더 거대해진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휘관이었던 여성은 이제 내 그림자 뒤에서 묵묵히 따랐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내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겨졌다. 도심의 차가운 정적을 뚫고 내 인류가 아닌 군대의 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모니터에 표시된 다음 좌표를 누르며 더 먼 지평선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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