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 숲의 유령과 철의 장벽
안개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갑차의 전조등이 뿌연 공기 속을 파고들었지만 가시거리는 짧았다. 바퀴가 축축한 흙과 나뭇가지를 짓이기며 나아가는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장갑차 상부에 몸을 기댄 채 주위를 살폈다. 학교를 떠나 산맥으로 접어드는 길은 고요했다. 공기 중의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옥상의 모녀 통합 코어와 연결된 내 의식은 숲의 미세한 떨림을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있었다.
은색 거미줄망이 닿지 않는 구역이었지만 하이브리드 대원들의 신경계가 내 안테나 역할을 대신했다. 뒤를 따르는 아들들은 짐승 같은 유연함으로 나무 사이를 도약하며 전방을 정찰했다. 벙커 01로 향하는 좌표는 이미 머릿속에 시각화되어 있었다. 그들이 숨겨놓은 통로가 멀지 않았다. 나는 옆에 앉아 무기를 점검하던 추적자 대원의 어깨를 툭 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의 안개 너머를 응시했다.
갑자기 고요하던 숲의 대기가 기괴하게 뒤틀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뇌 안쪽이 찌릿하게 울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장갑차의 난간을 꽉 잡았다. 지면 아래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눈이 멀 것 같은 파란 불꽃이 숲 바닥에서 치솟았다. 벙커 01의 방어선이 작동한 것이었다. 지면에 매설되어 있던 전자기 펄스 지뢰가 우리 대열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갔다.
강력한 전자기 파동이 육체를 훑고 지나갔다. 인공적인 기계 장치들을 표적으로 삼는 가혹한 압력이었다. 내가 타고 있던 장갑차의 엔진이 힘없이 꺼지며 굉음이 멈췄다. 제어판의 조명들이 점멸하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동시에 하이브리드 대원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들의 신체 일부를 구성하는 기계 부품들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멈춰버린 탓이었다.
합금 발톱을 세우고 나무를 타던 대원들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생체 조직은 살아있었으나 신경과 연결된 기계 보조 장치들이 먹통이 되자 그녀들은 극심한 마비 증상을 보였다. 숲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엔진이 멈춘 장갑차는 관성에 의해 조금 더 미끄러지다 굵은 나무 밑동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나는 차체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엎드린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들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벙커의 기술은 정교했다. 기계적인 신호로 움직이는 하이브리드 군단의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통신망이 차단되자 옥상에 있는 모녀 코어와의 연결도 끊어졌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방대한 데이터들이 순식간에 노이즈로 변해 사라졌다.
"당황하지 마라."
내가 소리쳤지만 대원들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계 신경망의 마비는 단순한 신체 정지가 아니라 의식의 단절을 초래했다. 바로 그때 안개 속에서 금속성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리듬을 가진, 인간의 것이 아닌 차가운 발걸음이었다. 벙커에서 보낸 사이보그 근위대였다. 그들은 전자기 지뢰로 우리를 묶어둔 뒤 확실하게 숨통을 끊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내면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기계적인 통신 장비가 죽었다면 내 혈관 속에 흐르는 바이러스의 힘을 직접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중단된 모녀 코어와의 연결을 물리적 신호가 아닌 생체 텔레파시의 영역으로 전환했다. 내 뇌를 발신기로 삼아 숲 전체로 강력한 생체 파동을 방사했다. 이것은 전자기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살아있는 세포들 사이의 공명이었다.
마비되어 쓰러져 있던 대원들의 의식 속으로 내 목소리를 직접 밀어 넣었다. 멈춰버린 기계 부품을 무시하고 그녀들의 생체 신경계를 강제로 재부팅하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 대원들의 몸이 경련하며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기계는 여전히 죽어있었으나 내 파동이 흐르는 생체 조직이 기계의 기능을 억지로 끌어왔다.
"일어나라. 사냥감이 제 발로 걸어오고 있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추락했던 대원들이 땅을 짚고 일어났다. 그녀들의 눈에 서린 안광이 붉게 타올랐다. 안개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이보그 근위대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은 강화 플라스틱과 합금으로 전신을 무장한 채 고출력 레이저 화기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믿고 있던 기술적 우위는 이미 내 생체 공명 앞에 무용지물이 되어 있었다.
사이보그 근위대가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내가 먼저 움직였다. 나는 장갑차 옆에 놓인 합금 창을 낚아채 정면의 적을 향해 던졌다. 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사이보그의 가슴 중앙을 관통했다. 금속과 회로가 부서지는 소리가 숲의 정적을 깼다. 이를 신호로 하이브리드 대원들과 아들들이 사방에서 튀어나갔다.
전투는 처절한 육탄전의 양상으로 흘렀다. 사이보그들은 레이저를 난사하며 저항했으나 근접전으로 파고드는 우리 군단을 막아내지 못했다. 아들들은 괴성을 지르며 적의 팔다리를 뜯어냈고 추적자들은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적의 등 뒤를 점령했다. 나는 전장의 중심에서 적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전신이 거의 기계로 대체된 고위직 사이보그였다.
그는 등 뒤의 부스터를 가동해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내 파동에 붙잡혔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신경 신호를 교란했다. 비행 장치가 오작동하며 사내가 바닥에 처박혔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대원들이 남은 근위대를 정리하는 동안 사내의 헬멧을 벗겨냈다. 차가운 금속판 아래에 창백한 인간의 얼굴이 일부 남아 있었다.
"벙커의 쥐새끼가 제법 용감하군."
나는 조롱하며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사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나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내 신경 촉수를 그의 뇌 인터페이스에 직접 꽂아 넣었다. 기계적인 해킹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고 강력한 침투였다. 그의 기억과 데이터가 내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의 뇌 깊숙한 곳에는 벙커 01의 모든 보안 체계가 숨겨져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는 그의 의식을 짓누르며 필요한 정보만을 골라냈다. 벙커의 최종 방어 체계인 '셀프 디스트럭트' 관리자 암호와 진입로의 구조가 보였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이 헤집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결국 혼절했다.
나는 갈취한 암호를 머릿속에 각인하고 촉수를 거두었다. 이제 벙커의 문을 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손을 들어 대원들에게 전진 명령을 내렸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숲 끝자락에 거대한 절벽이 나타났다. 바위 산의 일부분처럼 위장되어 있던 육중한 강철 문이 그 기괴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쓰러진 적의 리더를 뒤로하고 거대 진입로 앞에 멈춰 섰다. 벙커 너머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생존 남성들의 역겨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겠지만 이미 벙커의 심장은 내 손안에 있었다. 나는 문 옆의 패널에 손을 올렸다. 문 너머에서 기계 장치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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