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5: 영역의 확장
운동장으로 쏟아지던 검은 유충들이 여학생들의 피부 아래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비명과 신음이 가득했던 공간은 이제 기묘한 정적에 잠겼다. 240명의 여학생과 수십 명의 성인 여성들이 운동장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녀들의 몸을 감싼 검은 갑주는 햇빛을 반사하며 단단한 질감을 드러냈다. 나는 베헤모스의 사체 옆에 서서 이 장엄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 의식은 이미 그녀들의 신경계와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상태였다.
나는 집중하며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여성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눈동자는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나를 향한 절대적인 복종만이 들어 있었다. 이제 이들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었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내 감각을 공유하는 나의 확장된 신체였다. 나는 본격적인 원정을 위해 이들을 선별하기로 마음먹었다.
"학년별로 대열을 맞춰라."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기 전부터 그녀들은 움직였다. 발소리조차 일치시킨 채 계열별로 줄을 서는 모습은 기계처럼 정확했다. 나는 가장 앞줄에 선 체육 특기생들을 살폈다. 유충들이 형성한 생체 갑주는 그녀들의 근육 구조를 따라 최적화되어 있었다. 특히 다리와 팔 근육을 감싼 갑주는 폭발적인 근력을 발휘하기에 적합한 형태였다.
자연계열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그녀들의 갑주는 체육생들보다 얇고 매끄러웠다. 대신 갑주 표면에는 미세한 돌기들이 돋아 있었다. 나는 이 돌기들이 공기 중의 화학 신호를 읽어내거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원정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무력만이 아니었다. 지형을 분석하고 위협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탐사 능력이 핵심이었다.
나는 뇌파 동조율을 하나씩 확인했다. 내 의식이 그녀들의 머릿속을 파고들 때마다 전해지는 반응의 속도를 측정했다. 체육 특기생 80명 중 동조율이 가장 높은 30명을 먼저 가려냈다. 그녀들은 내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몸을 낮추며 곧바로 튀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어 자연계열 학생들 중에서 감각 예민도가 뛰어난 20명을 추가로 지목했다.
"앞으로 나와라. 너희가 제국의 첫 번째 칼날이다."
선발된 50명의 학생이 대열에서 빠져나와 내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갑주의 금속성 마찰음이 운동장을 메웠다. 나머지 학생들과 교사들은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눈빛으로 선발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 학교에서 이한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생존을 넘어선 신성한 계급의 상승을 의미했다.
나는 원정대를 이끌고 정문 근처로 이동했다. 학교를 둘러싼 생체 외벽은 여전히 맥동하며 외부의 위협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수비에만 치중할 단계는 지났다. 나는 갑주를 입은 여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영역을 선포하라. 이 땅의 모든 것을 나의 거미줄로 덮어라."
명령과 동시에 50명의 원정군이 일제히 손목과 입에서 은백색 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유충들이 숙주의 몸 안에서 생성한 이 실은 일반적인 거미줄과는 차원이 달랐다. 실 하나하나가 내 신경계와 연결된 전도체였다. 학생들은 학교 담장을 뛰어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녀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 전신주와 건물 잔해를 가로지르며 정교한 그물을 짰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 이 작업을 지휘했다. 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km 구역이 빠르게 은색으로 변해갔다. 공중에 거미줄망이 겹겹이 쌓이면서 거대한 돔 형태의 망이 형성되었다. 이 은색 망은 단순히 시각적인 경계가 아니었다. 숲속을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의 움직임부터 머리 위를 지나는 바람의 방향까지 모든 정보가 실의 진동을 타고 내 뇌로 직접 전달되었다.
감시 체계가 구축되는 동안 아들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첫째 아들을 포함한 신인류들은 이미 원정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들은 인간보다 거대하고 강인한 체구로 무거운 생체 장비들을 챙겼다. 아들들의 파동 능력이 원정군의 무력과 결합한다면 도심의 어떤 변종 괴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의 진동을 통해 주변을 탐색했다. 학교에서 약 800m 떨어진 저수지 근처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 숨어 있던 변이 생명체들이 은색 거미줄의 실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진동은 묵직하고 규칙적이었다. 꽤 덩치가 큰 놈들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놈들의 서식지가 우리 제국에 필요한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정복해야 할 첫 번째 목표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저수지 너머에는 수력발전소가 있었다. 태양광 발전만으로는 학교의 확장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수력발전소를 점령하고 가동하는 것은 제국의 에너지를 영원히 보장받는 길이었다. 나는 원정군에게 저수지 방향으로 진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정문을 열어라."
내 명령에 학교 정문의 생체 게이트가 양옆으로 벌어지며 길을 냈다. 끈적한 점액질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거대한 입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아들들의 호위 속에 운동장을 가로질러 문밖으로 나섰다. 내 뒤로는 검은 갑주를 입은 50명의 여학생 부대가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따라붙었다.
학교 밖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내 몸을 감싸는 힘은 뜨거웠다. 발바닥을 통해 지면에 깔린 거미줄망의 모든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읽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저수지가 있는 숲을 응시했다. 은백색 실들이 나무들을 칭칭 감으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미리 닦아놓고 있었다. 나는 숲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전진할 때마다 내 발밑의 실들이 미세하게 떨리며 주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숲의 나무들 사이사이에 박힌 은색 거미줄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것은 단순한 행군이 아니었다. 멸망한 세계 위로 나의 의지가 뻗어 나가는 확장 과정이었다. 나는 저수지 입구에 도착하자 멈춰 서서 손을 들어 올렸다.
검은 원정군이 내 뒤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며 전투 대형을 갖췄다. 수풀 너머에서 저수지의 검은 물결이 일렁이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은색 거미줄망을 통해 물밑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거대한 생체 신호들을 하나하나 포착했다. 놈들은 자신들이 사냥꾼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미 내 그물 안에 발을 들인 사냥감에 불과했다. 나는 아들들에게 공격을 명령하며 저수지 가장자리로 성큼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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