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베헤모스
서쪽 지평선에서 다가오는 보랏빛 거구는 단순한 변이 생명체 수준이 아니었다. 보행할 때마다 지면이 흔들렸고, 그 진동은 옥상 바닥을 타고 내 장화 끝까지 전달되었다. 학교 5층 높이와 맞먹는 높이는 그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 나는 놈의 이름을 '베헤모스'라고 붙이기로 했다. 하둡 무리가 길을 비터 주며 숲으로 숨어드는 모습은 마치 왕의 행차를 준비하는 신하들 같았다.
나는 옥상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들들에게 새로운 파동을 보냈다. 단순히 요새를 방어하는 단계를 넘어 이제는 저 거대한 산을 무너뜨려야 했다. 옥상 곳곳에 자리를 잡은 아들들이 일제히 가슴팍을 부풀리며 푸른 빛을 점멸했다.
"형태를 바꿔라. 단순한 가시는 저 육중한 장갑에 통하지 않는다."
내 의지가 생체 지붕을 타고 벽면으로 흘러내려 갔다. 부드럽게 맥동하던 외벽의 가죽 조직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까 하둡들을 꿰뚫었던 고정식 가시들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더니, 그 자리에서 원뿔 형태의 날카로운 골편들이 솟아올랐다. 이것은 아들들의 골밀도를 극대화해 만든 일종의 탄환이었다. 수천 개의 골편 돌기들이 베헤모스가 다가오는 서쪽 방향을 향해 일제히 각도를 조절했다.
베헤모스는 학교 정문 앞 100미터 지점까지 거리를 좁혔다. 놈의 등 위에 달린 수십 개의 촉수가 공중에서 채찍질하듯 휘둘러졌다. 나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앞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발사해."
명령과 동시에 외벽에서 폭발적인 근육 수축음이 들렸다. 벽면에 돋아난 골편들이 공기를 가르며 일제히 날아갔다. 수천 발의 뼈 화살이 베헤모스의 보랏빛 가죽을 파고들었다.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거대한 앞다리를 들고 휘청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화살이 박힌 자리에서 검붉은 액체가 쏟아졌음에도 놈은 촉수를 뻗어 학교 외벽을 강하게 타격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옥상 뒤편에 엎드려 있던 여교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수학 교사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나는 그녀를 무심하게 걷어차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냈다.
"추격자 부대, 전면 배치. 놈의 발목을 묶어라."
지하 사육실의 문이 열리며 괴수화된 여학생들이 지상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들은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움직임은 야수보다 민첩했다. 추격자들은 베헤모스의 거대한 다리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들며 날카로운 손톱으로 인대를 끊어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베헤모스의 피부는 생각보다 질겼다. 놈이 몸을 한 번 털자 추격자 몇 명이 멀리 튕겨 나갔다. 나는 상황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국어 교사와 교무부장을 향해 손짓했다.
"너희들이 할 일이 있다. 창고에 있는 생체 점액 부비를 가져와라."
그것은 아들들이 배출하는 점성이 강한 배설물을 농축해 만든 일종의 접착 폭탄이었다. 여교사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내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서둘러 옥상 창고로 달려가 끈적이는 액체가 가득 담긴 주머니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저놈의 눈과 관절에 던져!"
내가 소리치자 여교사들은 이를 악물고 생체 점액 주머니를 베헤모스를 향해 투척했다. 옥상 높이의 이점을 이용해 던진 점액들이 놈의 안구와 다리 관절 사이에 적중했다. 공기와 닿은 점액은 순식간에 굳어지며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했다. 베헤모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놈은 답답한 듯 촉수로 자신의 얼굴을 훑어냈지만, 그럴수록 점액은 더 넓게 퍼져나갔다.
"지금이다. 아들들, 도약해라."
나는 옥상에 대기 중이던 가장 덩치가 큰 아들 다섯 명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옥상 난간을 딛고 힘차게 도약하며 베헤모스의 등 위로 올라탔다. 놈의 등에는 수많은 촉수와 신경 다발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들들은 놈의 촉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척추 부근의 가장 굵은 신경 다발을 향해 이빨을 박아 넣었다.
베헤모스는 산천이 떠나갈 듯한 굉음을 내지르며 제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아들들이 신경을 갉아먹을 때마다 놈의 거대한 몸집이 경련을 일으켰다. 이윽고 놈은 힘을 잃고 학교 정문 기둥을 들이받으며 무너져 내렸다. 육중한 무게 때문에 주변의 나무들이 꺾이고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체 요새의 외벽을 타고 베헤모스의 머리 앞으로 다가갔다. 놈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으나 눈동자의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거대한 콧김이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나는 칼을 꺼내 내 손바닥을 깊게 그었다. 그리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놈의 미간에 난 깊은 상처 속에 들이부었다.
내 피에는 아들들의 유전 정보를 제어하는 특수한 바이러스가 농축되어 있었다. 피가 놈의 상처 속으로 스며들자 베헤모스의 보랏빛 피부 위에 푸른색 혈관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놈의 거대한 몸이 내 의지와 동화되는 과정이었다. 잠시 후, 베헤모스는 신음 섞인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복종의 의미로 내 발 앞에 코를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베헤모스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240명의 여학생과 교사들이 운동장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녀들은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하며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하둡 무리를 몰아내고 거대 괴수까지 자신의 발아래 둔 남자를 보며, 그녀들의 눈빛에는 공포를 넘어선 맹목적인 숭배가 서리기 시작했다.
"모두 연병장으로 집합해라! 오늘 밤, 새로운 신의 강림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 것이다!"
내 외침이 고요해진 학교 뒤편 숲까지 울려 퍼졌다.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릎을 꿇고 나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나는 베헤모스의 등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 거대한 무리 위에 군림하는 제왕의 기분을 만끽했다.
학교 식당에서는 가장 좋은 고기와 비축해둔 술들이 실려 나왔다. 아들들은 베헤모스의 주변을 돌며 고주파 음을 내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연병장 중앙에 베헤모스를 앉혀두고 그 거대한 몸체 위를 행사장으로 삼았다. 등 위의 평평한 공간에 매트리스와 비단천이 깔렸고, 수십 명의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내 시중을 들기 위해 올라왔다.
화려한 조명 대신 아들들이 뿜어내는 푸른 안개와 베헤모스의 몸에서 발산되는 보랏빛 광채가 연병장을 가득 채웠다. 나는 가장 먼저 나를 배신하려 했던 여교사들을 내 발치에 앉혔다. 그녀들은 이제 질투나 음모 따위는 잊은 채, 오직 내 눈길 한 번을 사로잡기 위해 몸을 낮췄다.
승리에 도취한 여성들의 환호성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녀들은 베헤모스의 거대한 발 주변에서 춤을 추었고, 일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내 이름을 연호했다. 나는 내 옆에서 술잔을 채워주는 학생 대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광란의 전야제를 지켜보았다. 멸망한 세계의 잔해 위에서, 나만의 신성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었다.
축제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헤모스의 머리 끝으로 걸어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수백 명의 여성이 나를 앙망하며 손을 뻗고 있었다.
"이곳이 새로운 낙원이다!"
나는 외쳤다. 베헤모스가 내 외침에 화답하듯 짧게 포효하며 땅을 울렸다. 여학생들은 그 진동에 몸을 떨며 자지러졌다. 나는 내 곁에 선 교무부장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당기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다른 여성들은 그 광경을 보며 소리를 질렀고, 자신들도 그 선택을 받기를 갈구하며 옷을 하나둘씩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연병장은 거대한 욕망의 도가니로 변해갔다. 수백 명의 여체가 뒤섞여 내 이름을 부르짖으며 몸을 비틀었다. 베헤모스의 등 위에서 펼쳐지는 이 기이하고도 파격적인 광경은 마치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풍경 같았다. 나는 가장 탐스러운 몸사위를 보이는 학생 한 명과 여교사 두 명을 내 침소로 불러들였다.
밤은 깊었지만, 학교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베헤모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학교 본관 건물을 뒤덮은 가운데, 지배자의 쾌락을 위한 행위는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헐떡이는 여성들의 신음 사이로 멀리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저 너머에는 정복해야 할 땅과 수많은 암컷이 남아 있었다.
내가 가진 절대적인 권력이 이 폐쇄된 공간을 넘어 비릿한 어둠의 세계로 뻗어 나갈 채비를 마쳤음을 느꼈다. 베헤모스의 맥박이 내 심장 박동과 일치하며 울렸고, 나는 황홀경 속에서 내 제국의 번영을 확신하며 몸을 섞었다. 그 순간, 베헤모스의 몸 안쪽에서 기이한 떨림이 발생하며 놈의 피부 위로 무수한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점액이 베헤모스의 등에 깔린 비단천을 적시며 올라오더니, 그 구멍 안에서 수만 마리의 검은 유충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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