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하둡의 물결

나는 옥상 난간에 서서 서쪽 하늘을 응시했다. 거대한 포효가 남긴 진동이 발끝을 타고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짐승의 외침이 아니라, 이 영역의 주인이누구인지 묻는 도전장이었다.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외벽의 생체 장갑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통해 아들들의 고동이 느껴졌다.

"응답해라."

나는 마음속으로 아들들에게 명령했다. 옥상 곳곳에 매달린 아들들의 포자가 일제히 푸른 빛을 내뿜으며 반응했다. 그들은 내 의지를 증폭시켜 학교 전체로 퍼뜨렸다. 벽면을 덮은 가죽 조직들이 일렁이며 비늘을 세웠다. 학교는 이제 거대한 생명체나 다름없었다. 나는 서쪽 지평선을 향해 내 안의 에너지를 한껏 끌어모아 방출했다. 공기가 요동치며 무색의 파동이 숲을 휘저었다. 오라는 뜻이었다. 숨어 있지 말고 네 부하들을 보내라는 노골적인 도발이었다.

도발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서쪽 숲의 나무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검은 무리였다. 수천, 아니 수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괴생명체들이 대지를 덮으며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나는 옥상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놈들의 정체를 확인했다. 하둡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변이된 쥐들이었지만, 크기는 셰퍼드만큼 컸다. 놈들은 털이 다 빠진 붉은 피부를 드러낸 채 앞발의 날카로운 갈퀴로 땅을 파헤치며 달려왔다. 입가에는 누런 액체가 흘렀고, 눈은 살의로 가득 차 번뜩였다. 저 정도 규모라면 웬만한 콘크리트 건물도 며칠이면 갉아먹어 무너뜨릴 수준이었다.

나는 지하 사육실에 대기 중인 추격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준비해라. 사냥감이 몰려온다."

내 목소리가 신경망을 타고 그녀들의 뇌에 박혔다. 추격자들은 어둠 속에서 몸을 낮게 웅크리며 근육을 팽팽하게 당겼다. 지상에서도 아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옥상 보루에 자리를 잡은 아들들은 가슴팍을 크게 부풀리며 고주파를 내뿜을 준비를 마쳤다. 나는 외벽의 생체 장갑에 더 강한 압력을 가했다.

하둡 무리가 학교 정문 앞 300미터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나는 함정을 가동했다.

"변화하라."

아들들의 파동과 추적자들의 본능이 공명하며 학교 건물이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드러웠던 생체 장갑의 표면이 순식간에 경질화되었다. 매끄러운 가죽 같던 벽면에서 수천 개의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다. 그것은 단순한 가시가 아니라 아들들의 뼈와 괴수의 이빨이 섞여 만들어진 강철보다 단단한 살상 도구였다. 담장 부근의 땅에서는 유기체 덩굴들이 솟아올라 지그재그로 엉키며 거대한 덫을 형성했다.

하둡 선봉대가 학교 외벽에 부딪히는 순간, 비명소리가 대기를 가득 채웠다. 놈들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가시 박힌 벽에 몸을 던졌다. 날카로운 침들이 하둡의 가슴과 머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무리의 힘 때문에 앞선 놈들은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벽에 압착되어 으깨졌다.

나는 이 광경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기로 했다. 옥상 입구로 연결된 통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계단에는 공포에 질린 채 웅크리고 있던 여교사 몇 명이 있었다. 수학 교사와 국어 교사, 그리고 교무부장이었다. 그녀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와 건물의 진동 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오세요. 당신들이 지켜야 할 왕국이 어떻게 적을 처리하는지 봐야지."

나는 그녀들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여교사들은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들을 이끌고 다시 옥상 난간으로 다가갔을 때, 아래쪽은 이미 피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둡들의 사체가 외벽에 층층이 쌓여갔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생체 장갑이 하둡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살점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가시 주변의 근육 조직들이 입을 벌리듯 꿈틀거리며 놈들의 잔해를 빨아들였다. 영양분을 섭취한 외벽은 더욱 무겁게 맥동하며 옆으로, 위로 증식해 나갔다. 벽면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졌고, 돋아난 가시들은 더 길고 날카롭게 변했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야..."

수학 교사가 입을 가리며 신음했다. 그녀의 눈앞에서 학교 건물이 살아있는 괴물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며 귀에 속삭였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적의 시체를 거름 삼아 요새를 키우는 거죠. 이제 당신들이 아는 학교는 없습니다. 이곳은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내 아이들이 지키는 성벽입니다."

교무부장은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내가 보여주는 이 압도적인 무력 앞에 완전히 굴복한 듯 보였다. 나는 그녀의 머리채를 가볍게 쥐어 들어 올리며 내 눈을 똑바로 보게 했다.

"복종하세요. 그럼 당신들은 이 안에서 여왕처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심하는 순간, 저 밑의 하둡들처럼 이 성벽의 일부가 될 뿐입니다."

여교사들은 앞다투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내 발등에 입을 맞추며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공포가 경배로 변하는 순간은 언제나 짜릿했다. 아래쪽에서는 추격자들이 성벽 밖으로 뛰쳐나가 남은 하둡들의 목을 따고 있었다. 그녀들은 짐승처럼 네 발로 달리며 하둡 무리의 측면을 파고들어 학살을 이어갔다. 아들들이 옥상에서 쏘아 올리는 고주파에 하둡들은 방향 감각을 잃고 서로를 물어뜯기도 했다.

수천 마리였던 하둡 무리는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성벽은 이미 원래 높이보다 2미터는 더 높게 솟아올랐고, 표면은 검붉은 금속 광택을 띠는 각질층으로 덮였다. 이제 하둡들의 이빨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완벽한 요새가 되었다.

그때였다. 하둡들의 공격이 멈췄다. 살아남은 놈들이 갑자기 뒤를 돌아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것이 아니었다. 더 거대한 존재가 길을 비키라고 명령한 것이 분명했다.

서쪽 지평선의 짙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나무들을 짓밟으며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의 높이는 학교 건물 5층 높이에 육박했다. 네 개의 거대한 다리가 땅을 딛을 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지르듯 출렁였다. 놈의 등 위에는 수십 개의 촉수가 꿈틀거렸고, 몸체 전체가 어두운 보라색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아까 들렸던 그 포효의 주인공이었다.

거대 괴수의 눈이 번뜩이며 학교 옥상에 서 있는 나를 향했다. 공기가 다시 한번 얼어붙는 듯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나는 여교사들을 뒤로 밀쳐내고 난간을 꽉 잡았다. 아들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며 낮은 저음을 내뱉었다. 지평선 끝에서 다가오는 그 거대한 존재는 한 걸음씩 내 요새를 향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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