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블랙 스모크> 3년 전, 메마른 협곡의 마을 '샌드스톰' ​ 마을은 온통 불타고 있었다. 화염이 하늘을 집어삼키고, 비명과 절규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출처 : 무료 이미지 사이트 Pixbay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우릴 버렸어!!!! 구해준다며... 왜 그냥 갔어요...? 너무.. 뜨거워.. 살려줘.. 제발.. 카라는 미친 듯이 불길 속을 헤맸다. 그녀가 구했다 생각한 아이를, 주민들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들뿐이었다. 하아... 하하.. 그때, 잔해 더미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피와 먼지로 뒤덮인 채, 무너진 철골을 짚으며 헛웃음과 함께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남자. 그는 몸 곳곳이 불에 그을리고, 허벅지와 복부, 가슴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엇다. 그리고. 모든걸 체념한채로 피를 토하더니 정신을 부여잡으며 이야기했다. 봤나, 카라? 우리가 가지지 못할 바엔... 아무도 가질 수 없어. 조직의 흔적은... 전부 지옥으로 가져간다... ​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라의 발밑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콰아아아앙!!!!!! ....!!!! 흣... 카라는 숨을 헉 내쉬며 눈을 떴다. 식은땀에 젖은 손이 떨렸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얼굴을 감싸 쥔 채 한동안 숨을 고르다, 서서히 현실의 공기가 느껴졌다. 불타는 마을의 잔향이 사라지고, 대신 낯선 평온이 스며들었다. ​ 그때,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낡은 난로 속에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잔잔한 소리. 불길의 굉음 대신, 나무가 타며 내는 작은 ‘딱’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 보안관 사무실은 포근했고, 따뜻한 불빛이 벽에 부드럽게 번졌다. 한쪽에서는 류지의 부관인 '무기'가 테이블에 다리를 걸친 채 신문을 넘기고 있었고, 그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웅성거리는 방 한쪽을 바라보더니 짧게 혀를 찼다. 으악! 형님! 이거 봐요! 파편이 엄청 깊게 박혔잖아요! 이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의사를 불러야... 으아아악!" ​ 털뭉이는 핀셋으로 류지의 등에서 작은 나무 파편을 빼내려다 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상을 지으며 류지의 등을 붙잡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 정작 당사자인 류지는 상의를 탈의한 채 의자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제 등짝에서 벌어지는 소동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위스키를 홀짝였다. 시끄러우니까 그냥 푹 쑤셔서 빼내기나 해. 그 손톱만 한 파편에 사람이 죽엇으면 인류는 진작에 전멸했어. ​ 어떻게 그래요! 이 섬세하고 고귀한 보안관님의 몸에! 으헝헝... 무기 녀석에게 시키면 안돼요? 저..저 똥폼잡고 한심하다는 듯이 이쪽 보는거봐!!! ​ 에혀.. 저는 공무중입니다. 가뜩이나 할 일 많은데 오늘 사건으로 안보던 신문까지 봐야되는 제 입장도 생각해 주세요.. 보안관 사무실의 낡은 난로 속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평화롭게 울렸다. 자폭 소동이 일어나고 그날 저녁. 마을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라는 수심가득한 얼굴을 거두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빠나 쟤나 엄살은. 그나저나 날 지키다 다친 건데, 치료비는 줘야 하나? 그녀는 총알에 긁힌 상처가 어느정도 지혈된듯, 옆구리에 감은 붕대를 풀며 말했다. 류지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바로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리오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알아냈어! 그놈들... 꽤나 이름 날리고 있는 녀석들이더라고! 리오의 외침에 신문을 보던 무기도, 징징거리던 털뭉이도, 태연하던 류지와 카라도 모두 리오를 주목했다. 리오는 숨을 고르며 빳빳하게 보이는 거액의 수배지 몇 장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코라, 코티, 코아노. 삼형제가 이끄는 '블랙 스모크'. 단순한 강도단이 아니라, 민가부터 관공서까지 습격한 이력이 있더라고. ​ 블랙 스모크.. 들어본적 있어요. 대륙을 잇는 증기기관 열차를 습격해서 최신형 보일러나 부품을 훔치고, 그걸 자기들만의 무기로 개조해서 팔아넘기거나 직접 사용해 최근 몸을 불린 녀석들이라죠. 무기가 입가에 남은 말끝을 삼키며 컵을 움켜잡아 커피를 한껏 입에 털어넣었다. '증기기관'이라는 단어에 류지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것은 단순한 마을 보안관이 상대할 규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연방 정부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워낙 거점도 불분명하고 유령처럼 움직여서 손을 못 쓰고 있다나봐. 자폭한 그놈은 조직의 말단이거나 산하조직원이였을거야. 정보를 쏟아낸 리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불안감이 어렸다. 문제는... 왜 그런 조직이 카라 누나를 노리고 나타났냐는 거야.. 사무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었다. 거대한 조직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무기는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류지를 보며 이야기한다. 류지. 2주 전에 연방정부로 부터 내려온 전보 기억나시나요? ​ 기억나. 마을과 연결되는 증기기관 노선에 대륙 횡단철로가 연결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지.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류지의 중얼거림에 카라가 생각이 정리된듯. 고개를 뒤로 젖혓다.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료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황량한 마을 풍경을 내다보았다. 몇달 전 평화로운 마을에 눌러 앉은 부랑배를 토벌하는 의뢰를 맡은적이 있었어. 하지만 미친녀석들이 본인들이 패배했을때를 대비해서 마을전체에 폭탄을 설치 했더라고. 내가 녀석들을 쓰러뜨렷을때는 도망간 부하들이 흔적을 없애려고 주민들쨰로 마을 하나를 날려버리더라.. 내가 마을을 해방시키고 하루뒤 일어난 일이야.. 류지의 등에서 파편을 다 뺴내고 붕대를 감아주는 털뭉이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 카라의 마음속에선 미약한 울음이 계속 올라왔지만 그녀는 그것을 억누른 채 고요하게 숨을 들이켰다. 분노가 서서히 차올랐고, 그 분노는 무력감과 죄책감으로 뒤섞여 더 날카로워졌다. 오늘 나에게 덤빈녀석이 그 잔당이라면... 복수를 명분 삼아, 더 큰 걸 노리고 있겠다는 생각이들어. 어쩌면... 이 마을 자체를 자신들의 새로운 거점으로 삼으려는 걸지도 모를일이 됏네... 카라의 나직한 목소리가 사무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그 말은 단순한 추측이 아닌 '샌드스톰'의 비극을 통해 그들의 방식을 엿본 자의 확신에 가까웠다. 류지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었고, 리오는 입술을 깨물었으며, 털뭉조차 징징거림을 멈추고 불안한 눈으로 어른들의 대화를 살폈다. 복수와 증기기관, 그리고 이제는 마을의 생존까지.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 ​ ​ ​ ​ <6장 : 작전> 바로 그때,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깨고 들어선 것은 마데였다. 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애플파이와 따뜻한 우유가 담긴 컵들이 놓여 있었다. 이런, 다들 심각한 표정들이네.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논의하는 것 같잖아? 마데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는 수배지들을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내고 그 자리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달콤하고 고소한 파이 냄새가 순식간에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의 기억을 밀어내고 사무실 안을 채웠다. 형!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야! 이쪽은 심각하다고! 리오가 버럭 소리쳤지만, 마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머리를 쓰는 일일수록, 뱃속은 든든해야 하는 법이야. 굶주린 늑대는 사냥에 실패하기 마련이지. 자, 식기 전에 다들 한 조각씩 들라고. 그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느슨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털뭉은 눈치를 한번 슥 보더니, 포크를 들고는 파이 쪽으로 달려들었고, 그 작은 입에 파이를 꾸역꾸역 밀어 넣기 시작했다. 무기도 한껏 무거운 표정을 풀고 헛기침을 했다. ​ 마데는 파이 한 조각과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카라에게 건넸다. 특히 너, 카라. 또 속으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고 있겠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네가 가장 잘 알잖아. 그의 말에 카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애써 감추려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먹고, 마시고, 숨을 고르자.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이 마데 님의 특제 애플파이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 특효약이니까. 마데는 윙크를 하며 류지에게도 파이 한 조각을 건넸다. 달콤한 파이 냄새와 마데의 능청스러운 여유는, 절망으로 치닫던 대화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모두에게 짧은 숨 돌릴 틈을 만들어 주었다. 류지는 피식 웃으며 파이를 받아 들었고, 사무실의 공기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 ​ 10분 후, 보안관 사무실의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 빈 접시들이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류지는 새로 따른 위스키 잔을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 마데가 가져온 짧은 휴식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풀기에 적절한것처럼 보였다. ​ 이윽고 류지는 생각이 정리된듯,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블랙 스모크'라는 놈들은 증기기관 기술을 노리는 조직이고, 과거 카라와 악연이 있다. 그리고 놈들은 곧 이곳 마을 근처에 건설될 새로운 노선을 노리고 나타난다... 카라, 네 말대로라면 이건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선, 마을 전체를 위협하는 계획적인 침공이 되겠다고 정리할까? 그의 목소리는 파이를 먹기 전보다 한결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류지, 연방에 지원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인력만으로는... 조직규모를 상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 그건 좀 어려울거야. 연방은 이런 작은 마을에 지원을 해주지 못할뿐더러, 지원이 온다 하더라도 시간 맞춰 온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무기의 질문에 마데는 고개를 저으며 반론을 펼쳤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류지의 눈빛은 더 이상 눈앞의 수배지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마치 마을 전체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듯했다. 맞아. 우리는 숫자도 부족할 뿐더러 지원을 받기도 어려워. 그러니 머리를 써야지. 우리가 가진 모든 걸 활용해야 해. 이 마을 전체를 말이야.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 ​ (다음날) 출처 : 무료 이미지 사이트 Pixbay 쾅! 쾅! 쾅! 조용하던 마을의 아침을 깨부수는 요란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마을 입구 쪽이었다. 카라는 총을 점검하는 손을 멈추고 벽에 밀착한채로 창밖을 훔쳐보았다. ​ 마을 입구, 'WELCOME'이 라고 쓰인 낡은 간판 아래, 말을타고 있는 낯선 사내 여덟명. 그들의 먼지 쌓인 판초 아래로 권총과, 라이플의 손잡이가 번뜩였고, 눈빛은 먹잇감을 찾는 늑대처럼 탐욕스럽고 오만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들고 있는 커다란 망치로 마을 입구의 표지판을 부수고 있었다.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 간판이 박살 나 땅으로 떨어졌다. ​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섰다. 그는 찢어진 눈매에 곰보 자국이 가득한 누런 얼굴로, 마치 제왕이라도 된 듯 거들먹거리며 외쳤다. 하하하! 어이!!! 카라!!! 코티 님이 직접 행차하셨으니, 곱게 기어 나와서 목을 바치시지!! 아니면 이 마을쨰로 날리는것도 나는 좋다고!!! '코티'. 수배지에 있던 삼형제 중 둘째의 이름이었다.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악스러운 도발의 목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이 창문 너머로, 혹은 가게 문틈으로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저들이 마을 전체의 기를 꺾고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있엇다. (전날 플래시백) 놈들은 증기 노선을 노리고 있어. 그 말은, 놈들이 원하는 건 이 마을의 '위치'와 '기반 시설'이라는 뜻이지. 그녀석들이 조직단위로 성장했다면 득을 우선시해서 대규모 파괴는 놈들도 피하고 싶을 거다. 그게 우리의 첫 번째 이점이야. 전날 류지의 말을 떠올리며 카라는 마지막 탄을 실린더에 밀어넣었고. 손목을 스냅하듯 가볍게 회전시켯다. 그래.. 니말이 맞을거야 보안관 양반.. 그녀의 마음 한켠에 남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조용히 뒤섞이며,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그 순간, 주점 아래층에서 류지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위치로. '우리쪽'은 신호할 때까지 절대 먼저 움직이지 마... 댕~ 댕~ 댕~ 보안관 사무소의 알림종이 낮고 길게 울렸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약속된 신호였다. ​ ​ ​ ​ ​ <7장 : 마을에 울려퍼지는 총소리> 어이~ 아무도 안보이네? 마을에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냐? 코티와 다섯명의 부하가 가장 큰 건물로 보이는 주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텅 빈 거리, 굳게 닫힌 문과 창문들은 그들의 오만함을 더욱 부추겼다. 마치 겁먹은 쥐새끼들이 모두 숨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방금 울리던 종소리는 항복이라도 하겠다는 신호엿던거야? 시시하긴! 넷은 입구를 지켜! 나머진 나랑 같이 계집년을 잡으러 간다! 놈의 소굴은 이, 다 쓰러져가는 주점일 게 뻔하지!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주점 문이 열리고, 코티와 부하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어두컴컴한 주점 내부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테이블은 정돈되어 있었고, 바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코티가 소리치려는 순간, 그의 부하 중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부두목, 저기 바닥에... 바닥에는 반짝이는 동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하가 무심코 허리를 숙여 동전을 주우려는 바로 그 찰나. (전날 플래시백) 둘쨰는, 이 마을이 우리에게 익숙한 전략적 요새라는거야. 전체를 거대한 덫으로 만들어서. 건물 하나, 골목길 구석까지 전부 우리의 무기로 쓰는 거지. ​ ***휙!*** 어둠을 가르며 밧줄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낚아채더니, 거친 마찰음과 조여들었다. 시야가 한순간 뒤집혀 딸려 올라간 그는 천장에 힘껏 쳐박히더니 오징어마냥 추욱 늘어진채로, 대들보 아래서 거꾸로 흔들렸다 뭐, 뭐야!! ​ 부두목!! 여기서 당장 나가야 됩니다!!!! ​ 지금이야!!!!! ​ 코티와 부하들이 당황하여 소리치는 순간, 2층 난간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불꽃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탕! 탕! 카라의 쌍권총이 불을 뿜었다. 총알은 부하들을 직접 노린 것이 아니었다. 한 발은 그들의 발치 앞 바닥을 꿰뚫었고, 다른 한 발은 출입구 옆에 위태롭게 쌓여있던 술통 더미의 밧줄을 정확히 끊어버렸다 크악! 바닥에 박힌 총알 파편에 놀란 부하 하나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의 발이 닿은 곳은 단단한 마룻바닥이 아니었다. 주점 바닥에 교묘하게 깔려 있던, 기름칠 된 널빤지였다. 그는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며, 미리 파놓은 함정 구덩이 속으로 우스꽝스러운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우와아아악!!!!!!!!!! ​ 이, 이런 미친..! 우리를 유인한거야?! 남은 마지막 부하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그는 총을 내팽개치고 출입구를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가 출입구 문을 잡으려는 순간, 끊어졌던 밧줄에 묶여 있던 술통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육중한 오크통들은 그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그를 그 자리에 깔아뭉갰다. 콰르르릉~!! 요란한 소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2층 난간에서 카라가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녀는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연기를 입으로 후, 불어 날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이.. 뻔뻔한 계집년이!!!!!! 코티가 황급히 카라를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그의 등 뒤, 닫혀 있던 주점 주방 문이 벌컥 열렸다. 쾅! ​ 샷건 특유의 묵직하고 위협적인 격발음이 주점 내부를 뒤흔들었다. 류지였다. 코티가 든 라이플의 총신이 산탄에 맞아 박살 나며 불꽃을 튀겼다. 우리 마을에에 온 걸 환영한다, 불청객. 류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샷건을 어깨에 걸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코티는 부서진 총을 든 채 류지와 카라에게 완벽히 포위되었다. 아직.. 아직이야!!! 아직 밖에 우리 애들이 더 있거든?! 이정도 총소리가 났으니 그놈들이 곧 도착한다고!!! ​ 글쎄.. 그건 어떨까? 입구를 지키던 남은 부하 넷은 사방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굳혔다. 비어 있는 줄 알았던 마차 밑에선 석궁이 번뜩였고, 대장간에서는 기관총에 탄약이 들어가는 소리. 곡물 창고 2층 창문에선 낡은 사냥총의 총구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심지어 마구간 지붕 위에선 투박한 돌팔매를 든 마구간지기가, 이를 악문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이.. 이건... ​ 그래.. 포위됐다.. 자신들에게 겨눠진 수많은 무기에 긴장하며 경계하는 적들 앞에, 농기구를 든채로 접근하는 주민들과, 그 중심에서 머스켓을 들어올린 리오가 미소를 지은채로 천천히 다가왔다. 어이 형씨들? 리오가 비웃듯 고개를 기울이며 가슴 포켓에서 피지도 못하는 시가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운 나쁘게 걸렸네. 내 친구들, 좀 성질이 더럽거든? (전날 플래시백) 마지막은, '사람'이다. 이 마을에는 총만 잘 쏘는 총잡이만 있는 게 아니야. 마을에 위협이 닥치면 언제든 나설 수 있는 '영웅'들이 있는 장소란거지. 이, 이...! 코티는 박살 난 라이플과 자신을 겨누는 샷건과 리볼버를 번갈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오만하던 노란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 그 순간, 주점 바 테이블 뒤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그림자가 움직였다. 평소라면 총소리에 놀라 숨어있었을 마데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섬세한 유리잔 대신, 묵직하고 단단한 오크나무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술병을 조심스럽게 피해 코티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간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망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난, 시끄러운건 딱 질색이더라 퍽! 둔탁하고도 경쾌한 소리가 주점 안에 울려 퍼지고, 코티는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채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방망이를 만지작 거리며 싱긋 웃고있는 마데의 상큼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코티의 시야가 서서히 흐려진다. ​ ​ ​ ​ ​ <8장 : 심문>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보안관 사무소 안은 매캐한 담배 연기와 술 냄새, 그리고 끙끙대는 신음 소리로 가득 찼다. 코티와 그의 부하들은 의자에 단단히 포박된 채로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부어오른 걸 보니, 꽤나 험하게 다뤄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털뭉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손에들린 술병을 꿀꺽대며, 잔뜩 심각한 표정으로 어설픈 심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케흑..끅... 자, 다시 묻는다. 너희... 어머니가 좋아, 아버지가 좋아? 솔직하게 말해!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목숨만은 살려줄 수도 있다고! 털뭉이가 쥐고 있던 술병으로 코티의 머리를 툭툭 치며 윽박질렀다. 코티와 부하들이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왜 묻는 건데... 제발... 차라리 조직에 대해 물어보라고! ​ 보안관!!! 보안관 어딨어?!! 여기 악마가 있다!!! ​ 시끄러워! 질문은 내가 한다! 다음 질문! 된장찌개가 좋나, 김치찌개가 좋나! 이것도 대답 못 하면 네놈들의 충성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겠군! ​ 된ㅈ...꾸엑!!!! 콰장창!!!! ​ ​ 털뭉이가 또다시 부하 한명의 머리에 술병을 내리쳐 깨트렷다. 이미 3명의 부하가 이 말도 안되는 심문에 당해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해 있엇다. 틀렸어!!!! 나는 김치찌개가 좋다! ​ 뭐 어쩌라는 건데?!!!! 코티와 남은 부하들은 이 황당하고 맥락 없는 심문에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차라리 일방적인 고문이 나을 지경이었다. 그때, 사무소 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나머지 일행이 들어왔다. 마을 외곽을 수색하며 남은 잔당이 없는지 확인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뭐 하는 거냐, 털뭉아... 류지가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카라는 그 광경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고, 리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드디어 왔다!! 이놈들 아주 악질이야.. 입이 아주 무거워... 핵심적인 질문에는 하나도 대답을 못 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털뭉이의 모습에 코티는 거의 체념한 듯 눈을 감아버렸고, 부하들은 울먹거리며 살려달라 빌어댈것 같았어. 류지는 이마를 짚으며 털뭉이의 어깨를 붙잡고 뒤로 끌어냈다. 됐고, 이제부턴 내가 하지. 자, 코티. 정신 나간 술주정뱅이의 질문은 끝났으니, 이제 좀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볼까? 네놈들 뒤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진짜 목적이 뭔지. 장난스럽던 사무소의 공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류지는 코티의 앞에 놓인 책상에 걸터앉아, 묵직한 샷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철컥' 하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자, 다시 시작하지. 넌 코라, 코티, 코아노 삼형제 중 둘째. 맞나? 코티는 입을 꾹 다문 채 류지를 노려볼 뿐이었다. 류지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묵비권이라. 존중해 주지. 그럼 내가 아는 것부터 얘기해 볼까? 너희 '블랙 스모크'는 카라가 박살낸 어떤 인물과 관련하여 만들어졋고, 최근 열차와 관공서를 약탈해서 세력을 키웠지. 그리고 카라에게 복수한다는 명목으로 이 마을을 노렸고. 류지는 코티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른했지만, 그 내용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겨우 복수하자고 이런 시골 마을에 너희 둘째가 직접 행차하셨을까? 증기기관 기술을 훔친 놈들이라면, '돈'이 되는 걸 더 좋아할 텐데. 예를 들면... 이 근처에 새로 뚫릴 예정인 증기 노선이라든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코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찰나의 변화를 카라는 놓치지 않았다. 역시, 류지의 추측이 맞았다. 복수는 명분에 불과했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빙고. 그럼 질문을 바꿔보지. 그 증기 노선 정보를 누가 알려줬지? 너희 같은 오합지졸들이 그런 고급 정보를 얻을 리가 없는데. 네놈들 뒤에 누가 있는 거냐고 묻는 거다." 류지가 부츠에 묻은 먼지를 바닥에 털며 나직이 물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카라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자신의 쌍권총 중 하나를 뽑아 들어, 코티의 이마에 차갑게 가져다 댔다. '샌드스톰'을 기억해? 싸늘한 금속의 감촉과 함께 들려오는 카라의 목소리에 코티의 몸이 굳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한, 이글거리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거기서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난 보안관처럼 인내심이 좋지 않아. 네놈들 뒤에 누가 있는지, 전부 불어. 그렇지 않으면... 총구에 실린 살기는 진짜였다. 사무소 안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코티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말... 말하겠다... 말할 테니, 그 총 좀 치워줘... ​ 부..부두목 그건 일급 기ㅁ.. 입술이 부르터진 부하가 코티를 저지하려 할 때. 리오가 부하에게 총을 겨누며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올리며 한쪽눈으로 윙크한다. 쉬잇... 지금 나서면 진짜 몸에 구멍생긴다? 카라는 주위의 걸고 넘어지려는 부하의 태도를 무시한채. 대답하려는 코티의 이마에 총구를 더욱 강하게 짓눌렀고 그 압박감에 코티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보다못한 류지는 그런 카라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제지했다. 진정해, 카라. 일단은 들어보자고. 류지의 말에 카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총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코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정보를 준 건 '골드러시 컴퍼니'의 간부야... 이름은... '바르톨로뮤'라고 했어. ​ 골드러시 컴퍼니? 리오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 이름은 이 일대에 철도를 부설하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거대 기업의 이름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동경과 기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곳이었다. 계속해. 류지가 차분하게 재촉했다. 그놈이 먼저 접근해왔어.. 이 마을 근처로 새로운 증기 노선이 확정되었는데, 공식 발표 전에 마을을 손에 넣으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땅값이 폭등할 테니까. 우리가 마을을 차지하면, 컴퍼니는 나중에 헐값에 우리로부터 마을을 사들이고... 그 대가로 우리는 철도의 일부 지분과,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어.. 코티의 자백에 사무소 안은 침묵에 잠겼다. 단순한 복수극이나 약탈이 아니었다. 거대 자본과 결탁한,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치밀한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다. '블랙 스모크'는 그저 컴퍼니가 내세운 더러운 사냥개에 불과했다. 바르톨로뮤... 그놈은 어디에 있지? '샌드스톰'도 그놈이 시킨거야? 카라의 목소리에 다시금 분노가 서렸다. 몰라! 우린 항상 중간책을 통해서만 연락했어! 하지만... 곧 열릴 '선셋 페스티벌'에 컴퍼니의 중요 인사들이 온다고 들었다. 아마 그놈도 거기 있겠지! 선셋 페스티벌.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연례 축제였다. 인근 도시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교역하고, 유흥을 즐기는 자리였다. 그런 곳에 거대한 음모의 배후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었다. ​ 모두의 시선이 류지에게로 향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좋아. 이야기는 다 들었다. 무기. ​ 네, 보안관님. ​ 이놈들 전부 지하 감옥에 처넣어. 축제가 끝날 때까지 햇빛 볼 생각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류지의 지시에 따라 무기와 리오, 털뭉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티와 그의 부하들은 질질 끌려가며 마지막 발악처럼 소리쳤다. 이대로 안 끝나! 코라와 코아노가 오면 너희는 전부 죽은 목숨이야! 두고 보라고! 그들의 비명이 복도를 따라 멀어지고, 텅빈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카라에게 류지가 조심스래 말을 걸어왔다. 어제 너가 왔을때,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거 기억나? 마침 선셋 페스티벌과 관련된 문제야. ​ 타이밍 한번 기가막히네.. 방금 관심이 생긴 장소인데 겸사겸사 도와줄까? ​ 그녀는 과장되게 가슴을 폈지만, 그 웃음은 공허하게 울렸다. 애써 감춘 마음속의 소용돌이는 결국 정리되지 못한 채, 나지막한 혼잣말이 되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샌드스톰.. 증기기관.. 바르톨로뷰.. 골드러시 컴퍼니... 거대한 기업의 이름이 머릿속을 맴돌자, 과거의 잔상이 불현듯 눈앞에 피어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울려 퍼지던 '샌드스톰' 마을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이 그녀의 귓가를 다시 한번 찢어놓는 듯했다. 잊으려 했던 과거의 악몽과 새롭게 마주한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가 뒤섞여 마음속을 어지럽게 헤집고 있었다.

Comments (0)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share your thoughts!

Sign In

Please sign in to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