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선을 넘는 그림자
진우는 아침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지만, 입안이 마른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칠했다. 정희가 정성스럽게 끓여낸 소고기무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으나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젯밤 욕실 바구니에서 보았던 그 검은 레이스의 감촉이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는 듯해, 그는 숟가락을 쥔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정희는 아무런 기척 없이 민준의 입에 정성스럽게 밥을 떠넣어 주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은 늘 그렇듯 정갈했고, 그 고요한 움직임이 오히려 진우의 마음을 더 어지럽혔다.
"김 서방, 국이 좀 식었나 보네. 다시 데워줄까?"
정희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진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으며 국 한 모금을 급하게 삼켰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지만 속은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제 이 집안의 공기는 예전처럼 편안하지 않았다. 정희가 내는 작은 기척 하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조차 진우에게는 참기 힘든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위험한 경계선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장모님, 저 다음 주부터는 다시 회사에 나가보려고 해요. 밀린 일도 많고, 동료들 보기도 미안해서요."
진우는 시선을 국그릇에 고정한 채 말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복직 선언은 사실 도망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정희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가 쌓아 올린 도덕적 둑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업무에 치이다 보면 이 기괴한 열망도 가라앉으리라 믿고 싶었다. 정희는 숟가락을 잠시 멈추고 진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벌써 기운을 차렸다니 다행이긴 한데, 몸이 축나지는 않을지 걱정이네. 민준이는 내가 잘 보고 있을 테니 걱정 말게."
정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묘한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진우가 즐겨 먹던 밑반찬을 그의 앞으로 슬며시 밀어주었다. 진우는 그 배려조차 거북하게 느껴져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도망치듯 현관으로 향하며 출근복을 챙겼다. 신발을 신는 그의 등 뒤로 정희의 시선이 따갑게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복직 후 며칠 동안 진우는 일부러 야근을 자처하며 귀가 시간을 늦췄다. 사무실의 차가운 형광등 아래서 서류를 뒤적거리는 것이 정희의 비누 향이 감도는 집보다는 훨씬 견디기 수월했다. 그는 동료들과 어울려 저녁 식사를 하고, 필요하지도 않은 술자리에 끝까지 남았다. 하지만 밤늦게 돌아온 집에는 언제나 정희가 깨어 있었다. 그녀는 진우의 셔츠를 받아들며 그날의 피로를 묻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해 침실로 이끌었다.
"늦게까지 고생이 많네. 내가 김 서방 좋아하는 황태국 끓여놨으니 좀 먹고 자게."
정희는 진우가 집을 비우는 시간을 늘릴수록 더욱 지극정성으로 그를 대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거실 조명을 은은하게 조절해두고, 그가 좋아하는 향의 차를 준비했다. 진우가 밀어내려 할수록 정희의 손길은 더욱 끈질기고 섬세하게 그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진우의 의도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가 도망치려 하는 그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곳에 가장 안락한 덫을 놓아두는 식이었다.
금요일 밤, 진우는 평소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셨다. 억지로 누르고 있던 욕망과 죄책감이 알코올의 기운을 빌려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은 정적이 감돌았다. 거실 스탠드 하나만이 켜진 채 정희가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얇은 면 소재의 잠옷 위에 가디건 하나만 걸친 차림이었다. 진우가 신발을 벗으려 휘청거리자, 정희가 빠르게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어머,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조심하게."
정희의 몸에서 풍기는 그 특유의 달큰한 향기가 진우의 코끝을 자극했다. 술기운 탓인지 그녀의 얼굴이 죽은 아내 수진과 겹쳐 보였다. 하얀 피부와 가늘게 휜 눈매, 그리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 눈빛까지 모두 수진의 것이었다. 진우는 이성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는 정희의 어깨를 강하게 낚아채며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수진아... 수진아, 보고 싶었어."
진우는 몽롱한 목소리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정희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며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갈구하던 온기가 닿자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했다. 진우는 거칠게 정희의 입술을 찾아 눌렀다. 정희는 당황한 듯 그의 가슴을 밀어냈으나, 술에 취한 남자의 완력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진우의 손은 이미 본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는 정희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움켜쥐며 그녀를 자신에게 더욱 밀착시켰다.
묵직하고 탄력 있는 살결이 손바닥 안에서 뭉쳐졌다. 그 생생한 육체의 질감에 진우는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정희가 강한 힘으로 진우의 가슴을 밀치고 뺨을 후려쳤다. 짝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요한 거실을 갈랐다.
"정신 차리게, 김 서방!"
정희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얼어붙은 듯 정색한 그녀의 표정이 진우의 흐릿한 시야에 박혔다. 매서운 손길에 정신이 번쩍 든 진우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희의 잠옷 단추 하나가 어긋나 있었고, 그녀의 가슴팍은 거친 호흡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정희는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진우를 응시했다. 진우는 혀가 꼬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다음 날 아침, 진우는 지독한 숙취와 자괴감에 짓눌려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민준의 웃음소리와 정희의 나긋나긋한 대화 소리가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젯밤 감각적으로 각인된 정희의 엉덩이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했다. 수치심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그 부드러운 압박을 떠올릴 때마다 하복부가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거실로 나갔다.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정희는 진우가 나오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표정은 어제의 서늘함은 온데간데없이 평소의 온화함으로 돌아와 있었다. 진우는 그녀의 눈을 피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킨 후에야 겨우 입을 뗐다.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술이 너무 과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장모님."
진우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사죄했다. 정희는 국자를 내려놓고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진우의 앞에 따뜻한 꿀물을 내려놓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짧은 접촉만으로도 진우의 몸이 움찔 떨렸다.
"됐네. 수진이가 떠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김 서방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나.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그런 걸 내가 왜 모르겠어. 실수일 뿐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
정희의 위로는 자애로웠다. 그녀는 오히려 진우의 마음을 다독이며 모든 잘못을 죽은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렸다. 하지만 진우는 그녀의 손길이 어깨에 머무는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길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냥했으나, 그 속에 담긴 안도감 섞인 기류가 진우의 불안을 자극했다. 정희는 돌아서서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진우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갔다.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자신의 손등을 스치던 가운의 매끄러운 감촉과 손아귀에 가득 찼던 그녀의 묵직한 살덩이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희의 너그러운 태도가 그 기억을 더 은밀하고 단단하게 고착시키는 기분이었다. 진우는 꿀물을 들이켰지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달콤함조차 어젯밤의 그 소름 끼치는 쾌락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정희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자신이 이제는 사과만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지독한 늪에 발을 들였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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