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어둠의 온기
안방 침대에 누웠지만, 진우의 머릿속은 복도에 남겨진 정희의 젖은 발자국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가 가슴을 밀어내던 그 부드러운 압박은 여전히 흉골 근처에 묶여 떠나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그녀가 남기고 간 비누 향은 집요하게 코끝을 맴돌며 그를 괴롭혔다. 잠을 청해보려 눈을 감아도 망막 위에는 얇은 가운 너머로 비치던 굴곡진 실루엣이 잔상처럼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던 침묵을 깬 것은 옆에 잠들어 있던 민준의 거친 숨소리였다. 처음에는 꿈을 꾸는 줄 알았으나, 이내 들려오는 소리는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진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민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열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뜨거웠고, 아이의 호흡은 마치 좁은 구멍을 통과하듯 쌕쌕거렸다.
"민준아, 민준아!"
진우의 다급한 목소리에 민준은 눈을 뜨지 못한 채 앓는 소리만 냈다. 당황한 진우가 아이를 안아 들려 할 때,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정희였다. 그녀는 이미 가운 위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차림이었고, 손에는 해열제 병과 체온계를 들고 있었다. 아마 문밖에서 진우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열이 많이 나는구나."
정희는 익숙한 동작으로 민준의 고개를 돌려 고막 체온계를 꽂았다. 삑 소리와 함께 화면에 뜬 숫자는 39.5도였다. 진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응급실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허둥대는 진우의 어깨를 정희가 차분하게 눌렀다. 그녀의 손길은 단호했고, 그 단단한 접촉이 오히려 진우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일단 열부터 내리는 게 우선이야. 김 서방은 가서 대야에 미지근한 물 좀 떠다 주게. 너무 차가우면 애가 놀라니까 조심하고."
진우는 곧장 욕실로 달려가 물을 받았다. 조금 전 정희가 씻고 나간 욕실엔 여전히 습기와 그녀의 체취가 짙게 남아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 방으로 돌아왔다. 정희는 이미 민준의 윗옷을 벗긴 채 해열제를 먹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이의 입가에 묻은 약물을 닦아낼 때, 진우는 그 섬세한 움직임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좁은 침대 머리맡에 나란히 앉아 민준을 돌보기 시작했다. 정희는 물에 적신 손수건을 짜서 아이의 목과 겨드랑이를 닦아냈다. 진우 역시 수건을 받아 들고 아이의 다리와 팔을 닦았다. 좁은 공간에서 팔이 움직일 때마다 두 사람의 어깨와 팔뚝이 수시로 맞닿았다.
정희가 몸을 숙여 아이의 반대편을 닦을 때, 그녀의 카디건 앞트임 사이로 얇은 가운에 감싸인 풍만한 가슴의 곡선이 진우의 시야에 노골적으로 들어왔다. 숙여진 자세 탓에 그녀의 가슴은 중력을 따라 아래로 쏠려 있었고, 그 탄력 넘치는 무게감이 얇은 천 너머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진우는 침을 삼키며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정희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숙한 여인의 체온과 달큰한 비누 향이 자꾸만 이성을 흔들어놓았다.
"김 서방, 여기 좀 더 닦아주게."
정희가 민준의 뒤척임을 막기 위해 진우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가슴 옆면이 진우의 팔 상단에 묵직하게 밀착되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살결의 질감이 셔츠의 얇은 옷감을 뚫고 전달되었다. 진우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멈칫했다. 정희는 아이의 상태에 집중하느라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진우의 자극은 이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스탠드 등 하나에 의지한 채, 두 사람은 민준의 뜨거운 열기를 나눠 가졌다. 물에 젖은 정희의 손가락이 실수처럼 진우의 손등을 스칠 때마다 그는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찔렀으나, 동시에 이 밀폐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금기된 위안은 지나치게 달콤했다.
새벽 세 시를 넘길 무렵, 다행히 민준의 호흡이 고르게 돌아왔다. 정희가 다시 체온을 재보니 37.8도였다.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긴장이 풀리자 지독한 피로가 밀려왔다. 옆을 보니 정희 역시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훔치며 민준의 이불을 덮어주고 있었다.
"다행이네. 이제 좀 잘 거야."
정희는 나긋나긋하게 말하며 진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도 피로가 서려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시선은 여전히 깊고 묵직했다. 진우는 그녀의 수고에 감사를 표하려 입을 열었으나, 정희가 먼저 그의 어깨에 머리를 천천히 기댔다.
갑작스러운 무게감에 진우는 굳어버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목덜미를 간지럽혔고, 그녀의 고른 숨결이 그의 가슴팍에 직접 닿았다. 그녀의 체온은 열병을 앓던 민준의 그것보다 더 뜨겁게 진우를 달구었다. 진우는 차마 그녀를 밀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온기가 자신의 상실된 마음을 메워주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려다 손을 허공에 멈췄다.
정희는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었다. 진우는 그렇게 한동안 어둠 속에서 정희의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장모라는 명분 아래 숨겨진 이 기묘한 포옹은, 죽은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동시에 생존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일깨웠다.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질 때까지 진우는 눈을 감지 못했다.
아침 햇살이 창살을 타고 들어올 즈음, 진우는 눈을 떴다. 정희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간 뒤였다. 민준은 다행히 열이 완전히 내렸는지 평온한 얼굴로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진우는 찌부듯한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거실은 정희의 손길이 닿아 이미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방에서는 아침 국 끓이는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진우는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정희가 방금 씻고 나간 듯 자욱한 수증기가 남아 있었다. 거울에는 뿌연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바닥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세면대 아래 놓인 빨래 바구니를 시선이 스쳐 지나가던 중, 진우는 바구니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정희가 어젯밤의 소동 중에 미처 안쪽으로 밀어 넣지 못한 듯한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었다.
진우는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60대의 여인이 입는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화려하면서도 관능적인 디자인의 속옷이었다. 얇은 레이스 사이로 살결이 그대로 비칠 듯한 실루엣은 어제 달빛 아래서 보았던 그녀의 육체를 더욱 생생하게 연상시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진우는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고 나서 홀린 듯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닿는 레이스의 감촉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서늘했다. 그는 당혹감과 수치심에 휩싸이면서도 손에서 그것을 놓지 못했다.
망설이던 진우는 천천히 속옷을 들어 올려 코끝에 가져다 댔다. 정희의 몸에서 풍기던 그 짙은 비누 향과, 그 아래 숨겨진 은밀하고 진한 중년 여인의 체취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의 향기였다. 진우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그녀의 흔적을 깊게 탐닉하며 하복부에 차오르는 팽팽한 통증과 쾌락 섞인 고뇌를 고스란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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