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어둠 속의 질문
복도는 차가웠다. 돌벽을 타고 내려오는 밤기운이 망토 위로 스며들었지만 고성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손끝에 아직 편지의 질감이 남아 있었다. 아코나이트 특유의 청색반응이 유리병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에스텔이 직접 보냈다면 그런 조잡한 수법을 썼을 리 없다. 누군가가 그녀의 편지를 가로채 독을 바르고 다시 봉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라이라의 짓일 수도 있고, 제3자의 개입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레이나의 침실 문 앞에서 그는 걸음을 멈췄다. 문틈 아래로 등불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깨어 있다는 뜻이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도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노크는 하지 않았다. 손잡이를 돌리자 걸쇠가 걸려 있지 않아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흐르고 있었다. 레이나가 즐겨 쓰는 라벤더 오일 냄새였다. 그녀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고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머리핀을 하나씩 빼내어 화장대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가 어깨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여전히 빗질을 계속했다.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고성욱은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방 안에 또렷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레이나가 비로소 손을 멈추었다. 거울 속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초록빛이었다. 등불 불빛 아래에서 짙은 호박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라이라는 애송이에게서 도망쳐 온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마치 그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아니, 사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나는 이 궁전 안에서 벌어지는 일 중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고성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벽에 걸린 검집으로 걸어갔다. 오래된 검집 안에는 장식용 장검이 아니라 실전용 단검이 들어 있었다. 그가 직접 걸어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 방을 방문할 때마다 필요한 물건이 되어 있었다.
단검을 뽑아 침대 프레임에 꽂았다. 끝이 나무를 뚫고 들어가며 짧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레이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눈빛에는 놀라움보다 흥미가 담겨 있었다.
"무슨 날카로운 기분으로 온 거야?"
고성욱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부츠를 벗기 시작했다. 한 짝씩 발로 차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죽이 돌바닥에 닿으며 둔탁하게 울렸다.
"오늘 밤은 특별하군."
레이나가 일어나 화장대에서 그에게 다가왔다.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얇은 실크 슬립 위로 가운을 걸친 차림이었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서서 셔츠 깃을 손끝으로 잡아당겼다.
"라이라를 협박하다 왔으면서."
그녀의 손끝이 그의 목덜미를 스쳤다. 차가운 피부였다.
"협박이라기보다 확인에 가깝지."
"확인했어?"
"반 정도."
그녀의 손목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레이나가 휘청이며 그의 무릎 위로 넘어졌다. 그녀의 손이 그의 어깨를 짚으며 균형을 잡았다.
"반 정도면 충분한 거야?"
"라이라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됐지."
"네가 못 알아내는 게 있을까?"
레이나의 입술이 그의 귀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다. 숨결이 따뜻했다.
"오늘 밤은 누구를 위한 거야?"
질문 속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라이라에게 보내는 메시지인지, 에스텔에게 보내는 경고인지, 아니면 레이나 자신을 재확인하려는 것인지.
고성욱은 대답하는 대신 그녀의 드레스 끈을 어깨에서 흘려보냈다. 얇은 천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레이나는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끈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살짝 어깨를 틀어 더 쉽게 벗겨지게 했다.
그녀의 드레스가 허리까지 내려갔다. 안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고성욱은 그녀를 밀어 침대 위에 눕혔다. 레이나의 머리가 베개에 닿으며 흩어진 머리카락이 주위로 퍼졌다. 그는 일어나 바지를 완전히 벗어 던졌다. 바지가 화장대 옆 의자에 걸쳐졌지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녀 위로 올라탄 뒤 양손을 머리 위로 모아 한 손으로 눌러 고정했다. 레이나는 몸을 비틀며 저항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의 손아귀 힘을 시험하는 움직임이었다.
"오늘 밤은 누구를 위한 거야?"
그녀가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그녀가 진짜 답을 원한다는 뜻이다.
고성욱이 그녀의 턱을 집어 올렸다.
"라이라가 네게 뭘 알려줬지?"
레이나의 초록빛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순간적이었지만, 고성욱은 놓치지 않았다.
"라이라?"
"그 애송이가 에스텔과 연락하고 있잖아."
"그걸 나에게 묻는 거야?"
"네가 모르는 걸 아는 사람 찾기가 힘들어서."
레이나의 입술이 굳어졌다가 다시 풀렸다. 웃음으로 가리려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눈빛에서 진실이 스쳐 지나갔다.
"라이라와 에스텔 사이에 무슨 연락망이라도 있는 거야?"
"그 애송이는 내가 정복하기 전에 에스텔 세력권에서 살았어."
"그게 언제인데? 십 년 전 이야기잖아."
"사람 관계라는 게 시간 지난다고 끊어지지는 않으니까."
레이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라이라가 뭘 숨기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지만 에스텔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표정이 굳어지는 건 확실히 봤어."
"언제?"
"며칠 전, 저녁 식사할 때였어. 라이라가 에스텔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였거든."
"무슨 맥락에서?"
"기억나? 며칠 전 교회에서 온 사절단이 궁전에 방문했잖아."
고성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 직속 교회에서 파견된 중간 관리인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에스텔과 아는 사이였나 봐." 레이나가 말을 이었다. "라이라와 짧게 대화를 나누더라. 나는 멀리서 봤는데, 라이라의 표정이 상당히 굳었어."
"사절단 중 누구였지?"
"키 작은 남자였어. 갈색 머리에 안경을 쓴."
고성욱은 그 정보를 기억 속에 저장했다. 갈색 머리의 키 작은 남자—교회 사절단 명단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왜 지금 알려줬어?"
레이나가 입꼬리를 올렸다.
"네가 물었으니까."
고성욱은 그녀의 턱을 더 높이 집어 올렸다.
"내가 묻기 전까지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내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녀의 말투에는 도전적인 빛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고성욱은 그 속에서 다른 것을 읽어냈다. 레이나는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별해서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텔과 라이라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까지 숨겨두고 있었다.
악녀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정보를 무기로 삼고, 적절한 순간에 꺼내서 최대의 이득을 얻으려 한다.
고성욱은 그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교회 사절단이라는 게 흥미롭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그는 침대 머리맡의 등불을 바라보았다.
"교회 성녀인 네가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움직인 것 같으니까."
레이나의 눈빛에서 짧게 불쾌함이라는 감정이 번졌다.
"교회는 항상 움직이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에 냉기가 섞였다. "나는 한 갈래일 뿐이고."
"알아." 고성욱이 그녀의 말에 짧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레이나가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단순한 성녀 이상으로, 교회 서열에서 세 번째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 조직도상의 위치일 뿐, 실제 권력 구조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레이나는 교회라는 조직 자체에 충성하기보다는, 교회를 도구로 사용하는 데 능한 인물이라는 것을 고성욱은 잘 알고 있다.
그녀에게 교회라는 조직은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고, 필요하면 배신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에스텔과 연결된 사절단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분명한 의도를 가진 행동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먼저 공개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악녀들의 전형적인 수법이고, 고성욱은 이미 익숙해져 있던 것이었다.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남아 있다.
라이라와 에스텔 사이에 어떤 관계망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편지에 바른 독약의 출처에 대한 것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독약 성분 자체만으로 판단한다면 틀림없는 네트워크 소유자의 소행이다... 그리고 아코나이트 계열 미량 독 같은 것은 일반적으로 제국 서부 연안 무역상들을 통해 들어오곤 한다.
하지만 지금 라이라에게 직접 추궁할 기회는 이미 지나갔다... 그는 라이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명령했고, 정보도 부족한 상태였다.
차라리 여기서 얻은 새로운 단서인 교회 사절단 경유 루트부터 추적하는 편이 빠르겠다는 판단이다... 레이나에게 더 이상 물어봐야 할 것은 없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확인해둘 것이 하나 남아 있다...
그와 동시에 고성욱은 등불 앞으로 상체를 기울여 마치 조용히 끄려는 듯 속삭였다...
"마지막 하나만 더 확인할게." "하면 돼." "사절단 명단에는 아직 그 남자가 있는 채로 남아 있어?" "사흘 후면 돌아간다는 소식 들었는데..."
레이나의 눈빛이 스치듯 흔들렸다는 점...
그걸 확인한 고성욱은 침묵 속에서 조용히 웃음 지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사흘...
사흘이면 충분하다...
충분히 준비하고 움직일 시간이다... 사흘 후 교회 사절단과 함께 간 인물 속으로 파고들면 된다... 그리고 에스텔이 연결된 실마리가 더 있으니...
등불 앞에서 그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한 줄기 빛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동화되어, 방 전체를 집어삼키기 직전이다...
침대 끝 프레임까지 어둠에 삼켜졌다...
레이나의 손목 쥐는 힘이 조금 느슨해졌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웃고 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딱딱한 긴장감과 설렘이 뒤섞인 창자가 감각으로 매만져진다... 곧 어둠만 남았고,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로 소리 없는 움직임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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