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계약서
서재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는 세 장뿐이었다. 민혁은 첫 장을 집어 들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가 직접 초안을 잡은 문서였지만, 막상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로 보니 낯설었다.
본 계약은 당사자 모두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
본 계약은 어떠한 법적 효력도 가지지 않으며, 당사자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본 계약의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위반 시 모든 권리는 즉시 무효화된다.
두 번째 장에는 시간 제한에 관한 조항이 있었다. 최대 세 시간. 초대 후 최소 이틀의 휴식기. 비상 연락망. 그는 각 조항을 한 번 더 읽고는 마지막 장으로 넘어갔다.
서연의 서명이 있었다. 그녀의 글씨는 평소보다 작고 단정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썼다는 게 느껴질 만큼 또박또박했다. 민혁은 그 옆 빈칸에 펜을 갖다 댔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소리가 서재에 작게 울렸다.
그는 서명을 마치고 문서를 접어 서랍 안에 넣었다. 잠금장치를 걸었다. 손이 떨리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거실 벽시계가 7시 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팔걸이에 팔을 얹자, 화장대 거울에 비친 서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거울을 향해 몸을 약간 기울인 채 향수 병을 손에 들고 있었다. 손목 안쪽과 목 옆에 뿌리고, 마지막으로 귀 뒤쪽을 스쳤다.
그녀가 입은 원피스는 평소 그녀의 스타일과 달랐다. 평소에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차분한 색을 즐겼는데, 오늘은 검은색이었다. 어깨가 드러나는 라인이었다. 그녀가 거울 속에서 자신을 한 번 더 살피고, 아랫입술에 립스틱을 살짝 덧바르는 순간 민혁은 시선을 돌렸다.
서재에 둔 계약서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이 계약은 세 사람의 동의로 성립되며, 그 누구도 강요받지 않는다.
그가 서명할 때, 서연은 자기 서명 옆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확인 질문도 없었다. 신뢰라는 단어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건지, 그녀가 이미 더 깊이 들어와 있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초인종이 울렸다.
민혁은 일어나며 소파 가장자리를 짚었다. 문까지 걸어가는 몇 걸음이 길게 느껴졌다. 현관문 너머로 남자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도윤은 마흔 가까이 되어 보였다. 정장 차림이었고, 넥타이는 챠콜 그레이였다. 서류 가방 대신 오른손에 작은 보틀을 들고 있었다. 입구에 서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이미 서연을 통해 보았던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도윤입니다."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악수는 짧고 단단했다. 민혁은 그가 건넨 보틀을 잠깐 쳐다보았다. 라벨도 없고, 용량도 작았다. 도윤이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오일입니다. 나중에 필요할 것 같아서요."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옆으로 비켰다. "들어오세요."
도윤이 현관에 들어서며 안쪽을 살폈다. 시선이 거실 가구와 벽걸이 시계를 스치고, 침실 문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민혁에게로 돌아왔다. 어떤 평가도 지나치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민혁은 소파를 안내하며 앉기를 권했다. 도윤이 소파에 앉자, 부드러운 가죽이 그의 체중을 받아냈다. 그의 자세는 편안했다. 처음 방문한 집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부엌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서연이 와인 두 잔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도윤에게 한 잔을 건네며 잠시 눈을 마주쳤다. 그 짧은 시선 안에 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편안함이 있었다.
"와인은 레드로 준비했어요."
서연이 말하고, 민혁이 다른 잔을 받아 들었다. 그녀는 민혁 옆에 앉는 대신 맞은편에 앉았다. 세 사람 사이에 낮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소파 위에는 계약서가 없었다. 하지만 셋 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도윤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계약서는 확인하셨죠?"
"네. 서명까지 했습니다."
민혁의 대답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유가 있었다. 회의실에서 거래를 마무리하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더 편안한 방식으로. 그가 와인잔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모든 조항은 서연 씨와 이미 협의된 내용입니다. 다만 오늘 처음 저와 직접 마주하는 자리이니, 아쉬운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시작 전에 조정하는 게 양쪽 모두에게 좋으니까요."
서연이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었다. 민혁은 그녀가 도윤의 말을 들으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는 것을 보았다. 그 미소가 그녀가 집에서 남편에게 짓는 표정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건 새로움이 아니라 어떤 확신이었다.
민혁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레드 와인 특유의 떫은 맛이 혀에 남았다. 침묵이 세 사람의 사이를 천천히 채워갔다. 시계가 8시 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음 장면을 누가 연출할지 정해지지 않은 채, 그들은 각자 술잔을 앞에 두고 서로의 호흡을 재고 있었다.
서연이 잔을 내려놓았다. 탁자에 닿는 소리가 작게 울렸고, 그 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바꿨다.
그녀가 일어나며 도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를 향한, 짧은 초대였다. 도윤은 잔을 놓고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침실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민혁은 소파에 앉은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연의 손이 도윤의 손을 놓지 않고 이끄는 모양새가, 그녀가 집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평소 방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침실 문턱에서 서연이 멈춰 섰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민혁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약속된 신호였다. 그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고, 민혁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시선만으로 주고받기로 정한 신호였다.
문이 닫혔다. 소리가 아니라 거실의 공기가 갑자기 정돈되는 듯한 느낌이 먼저 왔다. 침실에서 나던 불빛이 문틈을 따라 얇게 새어 나오다가 곧 사라졌다.
민혁은 소파에 다시 앉아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8시 4분. 초침이 도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그는 숨을 느리게 내쉬었다. 와인잔을 집어 마시려다 내려놓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노 때문인지 흥분 때문인지,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초침이 60을 넘길 때마다 그는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분침이 한 칸 움직일 때까지 그는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풍경화를 바라보고, 바닥에 깔린 러그의 실밥을 보았다. 그가 세운 규칙이었다.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5분이 지났다. 그리고 몇 초가 더 지나자, 서연의 휴대폰에서 짧은 벨소리가 울렸다. 한 번. 짧게. 끊겼다.
민혁은 일어섰다. 거실에서 침실까지 몇 걸음 되지 않았다. 복도의 불은 꺼져 있었다. 침실 문 앞에서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문고리에 손을 얹었고, 힘을 주어 밀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천천히 열리자, 어두운 침실의 공기와 함께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침대 위에서 서연이 네 발로 엎드려 있었다. 그녀가 하던 원피스는 침대 옆에 가지런히 개어 놓여 있었고, 팬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도윤이 그녀의 뒤에 있었고, 그가 서연의 백보지에 자신의 발기한 성기를 천천히 밀어 넣고 있었다.
민혁은 문턱에 서서 그 장면을 몇 초간 바라보았다. 서연의 허리가 아래로 꺾이고, 뒷덜미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허벅지 위로 늘어져 있었다. 도윤이 서연의 골반을 두 손으로 잡고 고정한 채 움직임을 조정하고 있었다.
서연의 보지가 도윤의 성기를 빨아들이는 순간, 민혁은 문틀에 손을 대고 멈춰 섰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도윤의 성기가 그녀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다시 빠져나온 다음 다시 들어가는 그 리듬을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의 성기가 바지 안에서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질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너무 다른 감각이었다. 더 원초적이고, 더 솔직했다.
그는 지퍼를 내렸다. 성기를 꺼내자 공기가 닿는 서늘함이 번졌다. 발기는 완전했다. 손으로 한 번 움켜쥐자 열기가 전해져 왔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그가 모르는 리듬으로 움직이는 서연의 엉덩이가 눈앞에 있었다.
민혁은 서연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았다. 피부가 뜨거웠다. 약속된 위치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똥꼬를 더듬자 그녀의 허리가 살짝 떨렸다. 도윤이 그 안쪽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움직임이 민혁의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성기 끝을 그녀의 똥꼬에 댔다. 도윤이 한 호흡을 멈추고 박자를 기다렸다. 민혁이 단번에 밀어 넣었다. 그녀의 조임이 단단하게 저항하다가, 이내 그를 통째로 받아들였다.
서연의 비명 같은 신음이 침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가 허리를 뒤로 젖히며 머리를 흔들었다. 두 구멍이 동시에 채워지는 그 감각에 그녀의 손가락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도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앞으로 밀 때마다 민혁이 뒤에서 반대 방향으로 밀었다. 서연은 두 남자의 리듬 사이에서 몸을 맡긴 채 숨을 쉬지 못했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단어도 노래도 아니었다. 그냥 어떤 파동이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두 남자의 호흡이 엇갈려 그녀의 몸이 버벅였다. 도윤이 속도를 늦추고, 민혁이 그에 맞춰 깊이를 조절하자 곧 리듬이 맞물렸다. 도윤이 앞으로 밀어 넣는 순간 민혁이 뒤로 당기고, 도윤이 빠질 때 민혁이 깊이 박아 넣었다. 그 반복 속에서 서연이 조금씩 더 크게 소리내기 시작했다.
민혁은 그녀의 엉덩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자기가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도윤이 실제로는 그녀의 앞에서 그녀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뒤에서 보이는 서연의 몸은 전적으로 민혁 것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가 절정에 다가가는 동안 도윤도 박자를 늦추지 않았다. 서연의 몸이 두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되자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게 부서졌다. 민혁은 마지막 순간 그녀의 똥꼬를 깊이 파고들며 사정했다.
정액을 뿜는 동안 몸이 떨렸다. 몇 초간 그는 의식을 놓고 있다가, 서서히 현실로 돌아왔다. 천천히 몸을 뺐다. 빠져나오는 감각이 묘하게 허전했다.
서연은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윤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리듬을 이어갔다. 그녀의 시선은 민혁을 향하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그가 물러난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눈은 도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민혁은 저기 마루에 놓인 자신의 셔츠를 집어 들었다. 소매를 꿰며 침실을 빠져나갔다. 아무도 그의 퇴장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 속 얼굴은 낯설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고, 눈동자가 이상하게 반짝였다. 그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방금 전의 장면과 그 장면 속에서 움직이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물을 틀어 얼굴을 씻고, 손에 묻은 땀을 닦지 않은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움직였다.
"이게 시작이다."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낮았다. 거울 속 민혁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Comments (0)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share your thou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