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 토사구팽>

털썩...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코라의 그림자를 덮으며, 건장한 사내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복수의 손끝에 닿기 직전, 그 마지막 한 걸음에서 코라는 분명 승리를 맛볼 듯한 짧은 환희를 느꼈을터였다.

그러나 그 찰나의 감정은 총성과 함께 산산히 흩어졌고,

흙먼지 속에 처박힌 입에서는 깨진 환희의 잔재가 피가 섞인 기침으로 거칠게 쏟아져 나왔다.

겨우 들어올린 고개의 시선 끝,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니며 물자를 전달하던 남자가 싸늘한 사형 집행인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구둣발로 코라의 덜덜 떨리는 손을 지그시 눌러둔 채 코안경을 고쳐쓰더니

마치 업무 보고서의 오탈자를 지적하듯 침착하고 건조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출처 : 무료 이미지 사이트 Pixbay (배경+코안경+오크테이블 합성)

회사의 자산 가치를 훼손하려 들다니... 계약 위반입니다.

코라의 눈동자가 분노로 번들거렸고, 목구멍에서는 짐승 같은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 소리를 단지 확인해야 할 마지막 반응처럼 잠시 바라봤을 뿐,

금세 흥미를 잃은 얼굴로 시선을 틀었다.

그의 눈길은 반대편의 카라 일행에게 향했고,

카라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모자 챙을 집어 들어, 마치 사교장에서 인사하듯 태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샌드스톰의 영웅' 카라 양.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부자연스러울정도로 차가웠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이 무식한 갱단 놈들의 뒤치닥 거리를 하던...

그는 품에서 하얀 장갑을 꺼내 끼며, 또렷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골드러시 컴퍼니 전략기획실 제3팀장,

바르톨로뮤 이사님 직속 실행 요원.

제이드입니다.

그의 자기소개가 끝남과 동시에,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청명한 마찰음은 대학살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철컥! 척!

코라의 뒤를 따르던 '블랙 스모크'의 조직원들 중 절반가량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총구를 돌렸다.

그들의 총구가 향한 곳은 카라일행이 아닌, 방금까지 등을 맞대고 있던 동료들의 머리였다.

어...? 야, 벤!

너 지금 어디를...?!

미안하게 됐수.

이번 달 입금처가 바뀌어서 말이야.

그렇게 됐다.

골드러시가 주는 퇴직금이 꽤 달달해서 말이지.

마르코.. 너까지...

그들은 처음부터 돈에 매수된 스파이들이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조직 내부.

상황 파악이 덜 된 충성파 조직원 몇몇이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정신차려!! 저새끼는 보스를 쐇다고?!

죽여버려! 저 우스운 안경잡이부터 쏴버려!

눈이 뒤집힌 두 명이 용납 할 수 없다는듯 라이플을 치켜들고 제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제이드는 예상했다는 듯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들의 격렬한 저항에 오히려 그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서늘한 살기를 뿜어냈다.

야만스럽기는.

이래서 교육 못 받은 놈들이란.

탕! 탕!

군더더기 없는 두 발의 격발과 함께 제이드의 리볼버가 짧게 불을 뿜었다.

달려들던 충성파 두 명의 미간에는 정확히 검은 구멍이 박혔고,

그들은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관성에 밀려 제이드의 발치로 굴러떨어졌다.

아, 이런. 바지에 더러운 피가 튀었군요.

내부... 분열? 이게 대체...

뭐야.. 왜 자기들끼리 쏘는건데...

명확했던 적과 아군의 경계가 무너지고,

예측 불가능한 살육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리오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눈앞에서 형이 배신의 총탄에 쓰러지고

가족 같던 부하들이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광경을 목격한 코티와 코아노의 눈동자에서,

이성이란 끈이 툭, 하고 끊어져 나갔다.

형님!!! 으아아아악!!!

제이드!!! 네놈을 찢어 죽여버릴 거야!!!

공포는 순식간에 짐승 같은 살의로 변했다.

코티와 코아노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괴성을 지르며,

앞뒤 재지 않고 제이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무방비한 돌진이었다.

저런, 우애가 깊군요

제이드는 다가오는 형제들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고, 총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류지의 눈빛이 번뜩였다.

폭발의 후유증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였지만,

보안관으로서의 판단력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무기. 2시 방향... 낡은 굴삭기다.

메인 밸브 아래... 붉은 녹이 슨 파이프... 거길 노려.

네 알겠습니다. 류지.

류지의 지시에 따라 무기는 대열의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서 블랙스모크가 밀고 들어온 굴삭기를 발견했다.

굴삭기는 오래된 외장은 기름때와 검은 재로 얼룩져 있었으며,

곳곳에 급하게 덧댄 수리 흔적이 잔뜩 붙어 있었다.

특히 메인 밸브 아래의 붉게 녹슨 파이프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듯,

뒤틀린 이음새 사이로 얇은 증기음이 새어 나왔다.

무기는 류지의 말을 듣자마자 라이플을 고쳐 잡았고 동시에 류지는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쏴라, 무기! 나머지는 뛰어!!

타앙!

무기의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정확히 굴삭기의 노후화된 압력 파이프를 관통한 탄환은,

내재되어 있던 고압의 증기를 해방시키는 열쇠가 되었다.

푸슈슈슈슈슈슈-!!!

출처 : 무료 이미지 사이트 Pixbay

마치 거대한 짐승이 비명을 지르듯,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하얀 증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광장 전체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화이트아웃 상태에 빠졌다.

지금이야! 빨리 빠져나가야되! 어? 카라?!

누나?! 아이씨...

털뭉아!!!

응! 이미 뛰고 있다고!!!

절묘한 퇴각 타이밍.

하지만 카라는 도망치기는커녕 연기를 헤집으며 앞으로 뛰어들었고,

놀란 리오와 털뭉이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짙은 안개를 가르며 뛰어들어, 분노에 휘말린 코티와 코아노의 뒷덜미를 거침없이 낚아챘다.

정신 차려! 죽고 싶어?!

이거놔!!!! 형님... 형님!!!!

으아아악!!!!!! 찢어 죽여버릴거야!!!!

코티와 코아노가 울부짖으며 저항했지만, 털뭉이 달려와 카라와 함께 그들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야 임마! 우리가 구하러 왔잖아! 지금은 뛰어야 해!!!

그 시각, 리오는 이를 악물고 제이드 근처까지 달렸다.

희뿌연 안개 너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코라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가 왜 이런... 짓을...

뻔히 다 보인다고요?

퍼억!

제이드는 증기로 시야가 흐려지자 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 순간 달려오던 리오를 발견해 그대로 발로 걷어찼다.

둔탁한 타격음이 안개를 가르며 울려 퍼지며.

코라의 옷자락을 잡으려던 리오의 몸은 축구공처럼 튕겨 나가 뒤로 굴러갔다.

제이드는 이미 쥐고 있던 리볼버를 틈새처럼 열린 안개 속으로 곧장 들이밀며,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크헉...!

주제 파악 못 하는 녀석이 있군요.

챙길 수 있는 것만 챙겼어야지.

탕! 탕! 탕!

총성이 터지자.

리오는 나뒹구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팔을 땅에 댔고,

몸이 뒤집히며 백플립으로 튕겨 오르듯 자세를 잡아냈다.

총알이 방금 전까지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워후... 위험해라... 이거는 안되겠는걸?

더 다가갔다간 벌집이 될 게 뻔했다.

코라는 피를 토하며 희미하게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뭐하는거냐'고 말하는 듯했고, 리오는 이를 악물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마데는 축 늘어진 류지를 번쩍 둘러업었다.

어이 류지!,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하라고! 전력질주할꺼니까!

하아... 하아... 하수구다! 2시방향 잡화점 앞 맨홀로!!

류지의 지시에 따라 마데는 뿌연 증기 속을 헤집고 하수구 입구로 몸을 던졌다.

카라와 털뭉이는 코라 형제를 들쳐업으며 맨홀안으로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리오와 무기가 엄호 사격을 하며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증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제이드는 텅 빈 거리를 보며 차갑게 식은 총을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그의 발밑에는 의식을 잃어가는 코라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호오... 잘도 빠져나갔군.

그는 도망친 방향을 쫓는 대신, 피 묻은 손수건으로 구두를 닦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상관없습니다. '미끼'는 여기 있으니까.

(10분뒤)

하수구의 역한 냄새를 뒤로하고, 일행은 마을 외곽에 위치한 빈 민가에 몸을 숨겼다.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과 거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마데는 땀범벅이 된 채 바닥에 누운 류지의 굳은 근육을 마사지하며 고통을 덜어주려 애썼고,

무기와 털뭉은 창가에 붙어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후우... 이렇게 마사지 해주는게 얼마만이야.

일단 여기라면 당분간은 안전할 거야... 놈들이 이쪽까진 수색하지 못했을 테니까.

젠장... 젠장...!

무거운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것은 억눌린 분노였다. 코아노가 벽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낡은 벽지 위로 회반죽이 부서져 내렸다.

형을... 코라 형을 저 지옥 구덩이에 버리고 왔어!

그 얍삽한 새끼한테 형을 던져주고 우리만 도망쳤다고!

코아노의 눈은 핏발이 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게 달아 있었고,

총을 정비하고 있는 카라에게 다가가며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손끝은 떨리고, 눈빛은 원망과 분노로 흘러내릴 만큼 시퍼렇게 가라앉아 있었다.

뭐하는 짓이야?! 그만둬!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그만해, 코아노.

그때, 바닥을 멍하니 보던 코티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제지했다.

코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동생보다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형은 지금 죽어가고 있어! 복수의 순간이 눈앞이였는데... 제이드 그 개자식이...!

이 모든게 다 너때문이야!!!

코아노가 형의 말을 뿌리치며 총구를 더욱 내밀었다.

카라는 그 모든 비난을 담담히 받아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 묻은 옷가지와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상처가 가득한 몸.

그녀의 모습 역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가면 죽어. 너도, 코라도.

카라의 목소리는 서늘할 정도로 차분했다.

그녀는 왼손으로 리볼버의 실린더를 찰칵, 돌려 넣으며 코아노를 직시했다.

지금 뛰쳐나가면 넌 제이드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리는 파리 신세일 뿐이야. 네 형이 그걸 바랄까?

닥쳐! 네가 뭘 알아!

코아노가 악을 쓰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린... 우린 잃을 게 없었어.

그 시궁창 같은 고아원에서 짐승처럼 살던 우릴 꺼내준 게 페드로 님이었어.

밥을 먹여주고, 잠잘 곳을 주고, 사람답게 살게 해 줬다고!

그의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젖어 들어갔다.

난 페드로 얼굴도 기억 안 나.

딱 한번 봣으니까... 하지만 코라 형이 그랬어.

그분이 우리 은인이라고. 형이 평생을 바쳐 갚겠다고 했으니까,

나도 따른 거야! 형이 내 가족이고 전부니까!

민가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들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었다.

'페드로'라는 이름 아래 뭉친, 갈 곳 없는 고아들의 처절한 생존기. 그것이 이 형제들의 실체였다.

코티가 조용히 다가와 흐느끼는 동생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의 눈동자 역시 흔들리고 있었지만, 카라를 향한 적개심은 많이 옅어져 있었다.

아까 광장에서 그들을 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제이드의 총구 아래 시체가 되어 있었을 거란 알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코티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카라를 향해 말했다.

카라... 그때 제이드를 쏜 게 단순 돈이나 다른 악의 때문이었어?

아니...

마을을... 폭파시킨건...?

코티는 한결 평온한 얼굴로 확신이 섞여있는 말을 던졌다.

마치 정해진 답을 듣고 싶다는 것처럼...

카라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코티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아니야.

...

그런가...

카라는 말없이 탄환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3년전 샌드스톰 마을이 폭파됐다는 신문의 기억이 스쳤다.

자신이 옳다고 외친 정의감이 구원으로 다가오지 못한 모습.

그리고 눈앞에서 울부짖는 저 형제들의 모습.

그것은 묘하게 겹쳐 보였다.

제이드는... 처음부터 우릴 버릴 생각이었겠지.

코티가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증기 노선 개발권... 바르톨로뮤와 골드러시 컴퍼니는 이 마을을 원했고,

우린 그저 더러운 일을 처리해 줄 청소부가 필요했을 뿐이야.

일이 끝나면...

우리도 처리됐을거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코티의 자조적인 말에 마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류지는 미동도 하지 못한 채 듣고만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그림자가 랜턴에 흔들리며 벽면에 길게 드리워졌다.

울 시간 없어.

그녀의 말에 코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카라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네 형, 아직 살아있어. 제이드 그놈은 철저한 장사꾼이야.

인질이 살아서 가치가 있다면 절대 죽이지 않아.

카라가 뒤를 돌아보며 형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악수가 아닌, 전사로서의 제안이었다.

선택해. 여기서 울다가 형을 따라 죽을지, 아니면...

나와 함께 그 코주부 안경를 날려버리고 형을 되찾을지.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났고,

이 순간 그들의 선택이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결정할 것임을 확실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16장 : 동맹>

누나... 농담이지?

잠자코 듣고 있던 리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을꺼냇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머스킷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카라와 두 형제를 번갈아 보았다.

뭔가 사정이 있어서 구해준 것 까지는 오케이야.

하지만... 손을 잡아?

저 녀석들은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라고!

방금 전까지 우리한테 총을 쏘던 놈들이라니까!

리오는 평소의 사람 좋은 미소를 완전히 지운 채, 불안과 불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항변했다.

그의 넓은 오지랖도, 마을을 불태운 적들과의 동맹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저런 놈들을 어떻게 믿어? 뒤통수라도 맞으면? 난 반대야. 절대 납득 못 해!

리오의 격앙된 외침에도 방 구석의 털뭉은 태평했다.

그는 먼지 쌓인 찬장을 뒤적거리더니, 기어코 주인이 숨겨둔 싸구려 위스키 한 병을 찾아냈다.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를 딴 털뭉은 병째로 술을 들이켰다.

캬아... 먼지 맛 반, 알코올 맛 반이네.

털뭉은 입가에 흐른 술을 대충 닦아내더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코티에게 다가갔다.

코티는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는 막내 코아노를 끌어안고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자, 한잔해.

털뭉이 불쑥 술병을 내밀자, 코아노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독이라도 탔을까 봐?

우리 리오가 좀 꽥꽥거려도, 지금 당장 너희를 쏠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맨정신으론 버티기 힘들잖아? 너나, 네 형이나.

털뭉의 느릿하고 맹한 말투에는 묘한 위로가 섞여 있었다.

코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코아노 대신 술병을 받아 들었고, 미소를 흘렸다.

적의 호의라기보다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건네는 위로 같았다.

그때였다. 소파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류지가 마데의 부축을 뿌리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드득...

굳었던 관절이 비명을 질렀지만, 류지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형의 품에 안겨 있던 코아노가 류지를 올려다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 또한 이 사태의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거나, 해코지 하려하는게 아닐까 불안이 스쳤다.

하지만 류지의 생각과는 달랐다.

그의 손은 코아노의 가슴팍, 조끼에 매달린 은색 뱃지로 향했고, 단호하게 떼어냈다.

이건 전리품으로 챙기기엔 너무 무거운 물건이야.

류지는 되찾은 뱃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잠시 내려다보았다.

흙먼지와 피가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했다.

그는 뱃지를 자신의 셔츠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일단은... 휴전이다. 서로 쏘는일은 없도록 하자고.

보안관의 투박하지만 단호한 결정에,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친애하는 저항가 여러분, 그리고... 유감스러운 도망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골드러시 컴퍼니의 제이드입니다.]

잠시 한숨을 돌릴틈도 없이,

마을의 정적을 찢고 제이드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기계적인 잡음이 섞인 그 목소리는 끈적할 정도로 정중하고 부드러웠다.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폭력을 즐기지 않습니다.

다만... 비즈니스에는 효율이 필요한 법이죠.

방금 저희는 주민분들이 대피해 있는 주점을 점거하였습니다.

또한 꽤 많은 양의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음을 알려드립니다.

3분... 아니, 정이 있으니 5분 드리죠.

카라 양, 그리고 코라 형제분들.

신사답게 걸어 나오신다면, 불필요한... '건물 철거'는 없을 겁니다.]

부드러운 협박이 끝나는 순간, 빈 민가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공포보다는, 어이없음이 감도는 침묵이었다.

카라는 창틈으로 주점쪽 방향을 싸늘하게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허세야

뭐.. 저쪽 입장에서는 통할거라 생각하는게 당연하니까요.

카라의 단언과 무기의 동조에 코티의 품에 웅크리고 있던 코아노가 발끈하며 고개를 들었다.

허세라니! 저 자식은 우리 뒤통수를 치고 형을 쏴버린 놈이야! 진짜로 터뜨릴 수도 있다고!

저년도 그렇고... 아까부터 너희들은 무슨 확신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데?!

아니, 못 터뜨려. 절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 것은 마데였다.

그는 류지의 굳은 어깨를 주물러주던 손을 멈추고,

코티를 향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제이드는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는 '회사원'이야.

우리 가게 '위그드라실'은 이 마을에서 지반이 가장 튼튼하고,

지하 창고가 넓어서 증기기관차 역으로 개조하기에 완벽한 구조지. 그걸 날려버린다?

그건 자기 실적과 사업 계획서를 스스로 찢어발기는 짓이야.

윗선인 바르톨로뮤가 가만두지 않을걸?

코아노 형씨, 저녀석을 안지 오래됐을텐데 우리보다도 모른다?

으득...

마데의 설명을 듣던 류지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는 뻐근한 목을 돌리며 컨디션을 점검했고 천천히 탁자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류지 이제 몸을 좀 가눌 수 있나요?

응. 이 정도면 움직이는 데 지장 없어. 걱정 끼쳤군.

할아버지, 재기하는데 좀 늦었수.

카라의 투박한 농담이었지만, 그 말투와 태도에 류지는 미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싸움이 끝나고도 여전히 평소처럼 투덜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류지는 나무 탁자 위에 흩어진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잘게 쪼개진 나무파편 몇 개를 집어 들더니,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편들을 이어 마을의 형태를 잡아가며, 다음 계획을 조용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놈은 건물을 인질로 잡은 척하지만, 사실은 건물이 놈의 족쇄다.

부수지 못한다는 걸 우리가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판은 뒤집혔어.

주점 밖에서 폭탄으로 포위망을 치고 우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

즉, 건물 내부는 현재 '무주공'이라는 소리다.

거기다. 우리는 놈이 소중히 여기는 그 건물의 구조를 놈보다 더 잘 알고 있지.

그렇지 않나, 사장님?

류지의 시선이 마데를 향했다. 마데는 빙그레 웃으며 간이지도 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물론이지. 술통을 옮기던 지하 수로... 일명 '개구멍'이 있어.

건물 지반 아래를 통과해서 내부 창고로 직결되지. 제이드가 쳐놓은 외부 포위망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거야.

작전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류지는 굵은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빠르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좋아. 놈이 5분 뒤에 밖에서 쇼를 준비할 때,

우리는 놈들의 발밑을 지나 건물 안을 선점 후 주민들을 구출한다.

작전은 신속하게 개시되었다.

제이드가 부여한 5분의 유예 시간은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일행은 류지의 수신호에 따라 폐허가 된 민가 사이를 그림자처럼 이동했다.

곳곳에 골드러시의 용병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 마을의 지리를 손바닥 보듯 꿰고 있는 보안관과 토박이들의 은밀한 기동을 잡아낼 수는 없었다.

우욱... 냄새.

이건.. 견디기 힘들겠군요..

코티와 무기가 코를 틀어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위그드라실 주점의 뒷골목, 그중에서도 가장 음습한 쓰레기 하치장 근처였다.

깔끔하기라면 둘쨰가 서러운 형이... 이런 곳을 비밀 통로로 쓴다고?

리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속삭이자,

마데가 씁쓸하게 웃으며 거대한 오크통 뒤편의 낡은 나무판자를 걷어냈다.

비상금은 가장 더러운 곳에 숨겨야 안전한 법이지. 자, VIP 전용 입구야.

판자가 치워지자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기어들어 갈 수 있을 만한 좁고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술 냄새가 훅 끼쳐왔다.

류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다. 조는 여기서 나뉜다.

그는 굵은 손가락으로 인원을 가리키며 역할을 배분했다.

침투조는 카라, 마데, 그리고 코티. 너희 셋이 안으로 들어간다.

마데가 길을 안내하고, 카라랑 코티는 주민들 구출에 힘써줘.

이 코티님만 믿으시지! 우리 형님 잘부탁한다고!

우리는? 우리는 뭐 멋있는거 없어??

리오가 묻자 류지가 샷건의 장전 손잡이를 철컥, 당기며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우린 정문에서 놈들의 시선을 끈다. 아주 요란하고, 시끄럽게 말이지.

제이드 놈이 '협상'이 통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 거야.

그런거라면 리오랑 내가 잘한다고!

잠깐.. 한입만 마시고...

털뭉이가 기어코 아무도 먹지 않은 싸구려 위스키 한병을 벌컥대며 마셧다.

류지의 시선이 막내 코아노에게 향했다.

넌 우리 뒤에서 엄호해라. 네 형을 구하고 싶다면,

지금은 총을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겨눠야 할 거다.

코아노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을 죽게 내버려두면... 진짜 가만 안둘거야...

걱정 마라. 내 구역에서 장례식은 더 이상 사절이니까.

류지가 털뭉에게 눈짓하자, 털뭉이 품에서 새로만든 화염병을를 꺼내 들고 히죽 웃었다.

파티 시작해 볼까요, 대장?

가자.

카라가 짧게 속삭이며 먼저 어두운 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 뒤를 이어 마데와 코티가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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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던 마을의 대로변, 삐걱이는 문소리가 정적을 깼다.

제이드의 부하들이 긴장하며 총구를 돌린 곳에는, 보안관 류지와 코아노, 단둘이 태연한 얼굴로 서 있었다. 마치 제 집 안방에 들어서는 듯한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크으으... 저 개자식...!

코아노의 어깨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시선은 2층 발코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은 코라와 충성파 조직원 몇몇이 기둥에 보기 흉하게 묶여 있었다.

총상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미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코아노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 하자, 류지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진정해, 지금 날뛰면 저 녀석 뜻대로 되는 거야.

1층에서 그들의 등장을 지켜보던 제이드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시선은 류지와 코아노의 뒤, 아무것도 없는 골목사이를 훑으며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정확히 5분이 됐군요. 늦지 않게 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호오... 보안관 나리와 막내 도련님이라.

영웅분과 나머지 분들은 어디 숨어서 쥐새끼처럼 양동이라도 펼치고 계신가보죠?

제이드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명백한 조롱이 담겨 있었고

류지는 동요하지 않은듯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보안관인 류지다.

이 별 볼 일 없는 마을에 이만한 군대를 끌고 와서 이 소란을 피우는 이유가...

그깟 대륙 횡단 철로 하나 때문이라면 정말 실망인걸?

류지의 묵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제이드는 놀란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발코니 기둥에 묶여 의식을 잃은 코라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오직 잘 닦인 도구를 감상하는 듯한 차가운 빛만이 감돌았다.

이윽고 제이드는 다시 류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아... 여러분은 그 정도로만 알고 계셨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말을 마친 제이드가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은 마을을 감쌋던 불기둥보다도 더 섬뜩하고 불길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마치 류지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더 거대하고 끔찍한 진실의 입구를 슬쩍 열어 보여주는 듯했다.

이사님께서는 지금, 더 원대한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이 황량한 서부를 뒤엎고 새로운 시대를 열 그림을 말이죠.

새로운 시대라... 거창하군. 그래서, 그 새로운 시대에 우리 마을이 뭘 해주길 바라는 거지?

고작 증기기관 정거장 역할은 아닐 테고.

류지의 질문은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이드라는 인물의 그릇과 그 배후의 진정한 목적을 가늠하기 위한, 날카로운 탐색이었다.

글쎄요...

힌트를 드리자면, 이 땅 밑에는 철로보다 훨씬 더 뜨겁고 가치 있는 것이 잠들어 있답니다.

제이드의 말에 류지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땅 밑. 뜨거운 것. 그의 노련한 감이 위험 신호를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었다.

마을의 운명, 아니 서부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무언가의 편린이었다.

하지만 류지가 그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제이드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저를 가지고 시간을 질질 끄는 건 상당히 불쾌하답니다, 보안관.

탕!

날카로운 총성이 고막을 찢었다.

총알은 류지의 귓가를 스치고 날아가, 주점 건너편 건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무언가를 정확히 꿰뚫었다.

쨍그랑!

흐아악!!!! 안돼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화염병을 던지려던 털뭉이가 들고 있던 술병이 박살 났다.

독한 술이 그의 옷을 적시며 허무하게 땅으로 흘러내렸다.

제이드의 총구는 어느새 털뭉이쪽을 향해 있었고, 그 끝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당신이 믿는 구멍들은 이미 다 막혔습니다.

(리오쪽 어두컴컴한 하수구 속)

리오의 거친 숨소리가 축축한 벽을 타고 울렸다.

발밑에서는 시궁쥐들이 찍찍거리며 달아났고,

등 뒤에서는 여러 개의 발소리와 불빛이 끈질기게 그를 쫓고 있었다.

젠장, 젠장...! 이쪽도 막혔잖아!

이봐 공주님~ 잡히면 잔뜩 귀여워 해준다니까?!

이쁘장한게 내 여자친구로 딱이야!!!

(주점과 많이 떨어진 건물 옥상)

이런... 완전히 포위됐군.

무기는 낮은 자세를 유지한 채, 자신을 향해 조여 오는 포위망을 담담하게 읊조렸다.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 건물 길목 모두, 제이드의 부하들이 총구를 겨눈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류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여전히 제이드를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의 침착함에 오히려 제이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군요. 동료들이 죽게 생겼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시다니.

아니면 혹시...

제이드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그렇군요. 진짜는 따로 있었나.

그의 시선이 주점의 심장부를 향하더니 이윽고 자신이 서 있는 흙먼지가득한 아래의 어딘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류지의 의도를 완벽히 간파했다는 듯, 조롱 섞인 목소리로 선언했다.

당신들 생각은 이미 다 읽고 있습니다,

하수구나 옥상에서 소란을 피우는 동안, 나머지 별동대는 주점 내부로 침투한다...

아마 어딘가에 있는 비밀 통로같은게 있나보지요?

하지만 어쩌나? 그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온 셈인데.

제이드는 승리를 확신하며 팔을 벌렸다.

그들은 이제 완벽히 고립되었습니다.

주점은 이제 저의 성이고,

그 안의 쥐새끼들은 모두 독 안에 든 셈이죠.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류지는 제이드의 승리 선언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였고

그 태연한 배짱에 제이드는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후후, 마음에 드는군요, 류지. 당신 같은 인재가 이런 시골 마을에서 썩기엔 아깝습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떻습니까?

이 마을만 넘겨준다면, 당신 평생 만져볼 수도 없을 만큼의 돈을 쥐여드리겠습니다.

제이드가 달콤한 회유를 던지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탕! 탕!

으아악...!!!

뭐야... 엄호!! 엄..ㅎ!!!!

이게 무슨 냄새..꾸엑...

외곽에서부터, 경쾌하고 익숙한 쌍권총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건물 너머로 제이드의 부하들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제이드의 자신만만한 미소가 처음으로 굳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류지가 마침내 입을 열었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그럴 줄 알았지.

그는 제이드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카라, 저 녀석은 어릴 때부터 지독한 깔끔쟁이라서 말이야.

냄새나는 곳은 절대 안 들어갔거든. 하수구 입구 깔짝정도는 했으려나?

류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한번 쌍권총의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나왔다.

주점 내부로 향했을 거라 믿었던 별동대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제이드의 포위망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이윽고 주점과 좀 떨어진 골목에서 부하 한명이 나뒹굴며 쓰러지더니

설마하던 모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등장 했다.

하하하! 어이!!! 제이드!!!

코티 님이 직접 행차하셨으니, 곱게 기어 나와서 목을 바치시지!!

카라.. 작전대로 해야지... 이러면 류지가...

두번다시 안들어가!!! 오빠 혼자가!!!

<17장 : 협상>

제이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류지의 양동작전,

카라의 별동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예상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고 있었다.

그는 한 방 먹었다는 사실에 분노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으며 차갑게 웃었다.

...과연. 재미있군요.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결국 당신들은 내 손바닥 안입니다.

남은 방향은 전부 내 병력들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이 자그만한 병력으로 뭘 할 수 있다는거죠?

다같이 모여서 항복을 권유하러 온겁니까?

항복? 아니, 그럴 리가. 이건 그냥... 시간 벌기 작전의 일부였을 뿐이야.

시간 벌기...?

당신네들이 우리 마을 통신 시설을 아주 박살을 내놨더군.

덕분에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겼지. 그래서 그걸 고치러 온 거야. 우린.

(하수구, 중앙 전기 제어반)

완전 다 부서진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이야.

축축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구 속.

적들이 리오의 뒤에 무더기처럼 쓰러져 쌓여있고,

리오는 제이드의 부하들이 마구잡이로 끊어놓은 전선 사이를 헤치고 있었다.

리오는 땀으로 축축한 손을 바지에 문지르고,

기억을 더듬으며 끊어진 구리선을 하나씩 잡았다.

이윽고 연결된 전선에 스위치를 넣자...

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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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 이쪽은 완료 했다고!!

강렬한 스파크가 튀며 전력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외부로 전기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주점 맞은편 건물 옥상)

사격으로 산산조각 난 안테나를 무기가 뽑아들며

철근으로 조잡하게 만든 예비안테나로 갈아끼운다.

그는 한 손으로 로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안테나를 끌어올리며 고정 장치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순찰하는 병력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며 숨을 죽였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골목 사이 어딘가)

어디보자... 빨간 선은 빨간 선에... 파란 선은... 아이고, 내 인생보다 더 꼬였네.

털뭉이는 류지가 미리 알려준 통신 케이블 중계함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에 적은 배선교체 방법을 눈이 빠져라 들여다 보고는 식은땀이 범벅된채 케이블과 씨름하고 있었다.

리오가 전력을 복구하고, 무기가 안테나를 세워도,

이 마지막 관문이 연결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그의 손에는 작은 절연 테이프와 니퍼가 들려 있었다.

등 뒤로 적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털뭉이는 마른침을 삼키며,

손에적힌 방법과 감에 의존해 마지막 케이블의 피복을 벗겨내고 조심스럽게 구리선을 꼬아 붙였다.

그의 손끝에서, 끊어졌던 마을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통신을 복구해서 뭘 어쩌시려고. 연방 정부에 구조 요청이라도 하시려고 하나요?

제이드가 애써 비웃음을 되찾으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약간의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아시다시피, 이런 작은 마을을 연방에서 도우러 올 리가...

맞아.

하지만, 진짜로 온다면?

그 순간이었다.

치이익.. 치이익....

제이드의 부하들이 점거하고 있던 중장비.

그 운전석에 설치된 공용 주파수 라디오에서 거친 노이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소음이 점점 커지며, 주점 앞 광장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제이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부하들 역시 당황하며 소리의 근원지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노이즈를 뚫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흠, 마이크 시험 중. 여기는 연방 보안국 제7기동대, 코드네임 '선라이더'. 응답 바란다.

반복한다. 여기는 연방 보안국 '선라이더'.

당신들의 구조 요청을 듣고 왔다.

광장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제이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연방 정부? 이 작은 마을의 분쟁에 연방 보안국이 직접 움직였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류지는 그 얼어붙은 표정을 향해, 승기가 바뀌었다는 투로 이어 말했다.

골드러시 컴퍼니의 불법적인 마을 점거와 민간인 학살 시도. 증거는 차고 넘칠 텐데.

이제 누가 독 안에 든 쥐새끼지, 제이드?

라디오에서는 계속해서 연방 보안국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재 마을 외곽 5마일 지점 통과 중. 약 10분 내로 진입한다.

마을 내부에 있는 불법 점거 세력은 즉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저항 시 교전 수칙에 따라...

제이드의 완벽했던 계획이, 그의 눈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분노와 당혹감을 넘어, 이제 눈앞의 보안관을 향한 순수한 살의로 번들거렸다.

네 이놈...!!

제이드가 품속에서 자신의 리볼버를 꺼내 들어 류지의 심장을 겨누었다.

모든 소음이 멎는 듯한 찰나의 순간.

캉!!!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제이드가 막 쥐었던 리볼버가 그의 손에서 튕겨 나가 공중을 돌며 바닥에 떨어졌다.

경악한 제이드가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그가 완벽히 포위했다고 믿었던 건물 옥상.

그곳에 무기가 누운 채로 라이플의 총구를 제이드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흔들림 없었고, 손가락은 방아쇠 위에 차분히 얹혀 있었다.

그는 포위해오던 적들을 조용히 처리하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추잡한 얼굴을 드러냈군요. 어설픈 신사양반.

중심부는 역시 바글바글하네? 형! 내가 도착했다고!

우리도 있다고!!! 이놈들아!!!

동시에, 하수구 맨홀 뚜껑이 포탄처럼 솟구쳐 오르며 리오가 뛰쳐나왔고,

적들의 등 뒤에서는 털뭉이가 던진 화염병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시작된 반격과 연방 보안국의 압박.

완벽했던 포위망은 이제, 제이드 자신을 옥죄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한순간에 사냥꾼에서 사냥감이 된 제이드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리볼버를 주우려다 멈칫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두 손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며, 류지를 향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애써 쥐어짜 낸 평온함이 묻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번 판은, 나의 패배로군요.

제이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묶여 있는 코라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부하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우왕좌왕하거나 무기를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류지는 그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묵직한 샷건을 천천히 들어 올려, 멀어지는 제이드의 등을 정확히 겨누었다.

그 행동 하나에 광장의 모든 소음이 순간 멎는 듯했다.

패배를 인정하는 놈이 그냥 걸어 나가려고?

그 서늘한 목소리에, 제이드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천천히 돌아보며,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기폭장치를 꺼내 보였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여유롭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한 독기가 번뜩였다.

보내주지 않으면, 모두 함께 날아가는 겁니다.

꽤 많은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고 했죠...?

이 버튼 하나면, 주민이고 건물이고 뭐고 전부 잿더미가 될 겁니다.

이 개자식이...!

코아노가 뛰쳐나가려 하자 류지가 팔을 뻗어 막았다.

제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협상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갑시다, 보안관. 나를 이대로 보내주세요.

그러면 저도 이 마을에서 깨끗하게 물러나겠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마을을 '해방'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의식을 잃은 코라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대신, 저 녀석은 데려가겠습니다.

어차피 당신들에게도 쓸모없는 짐 덩어리일 뿐이잖습니까?

그 제안이 떨어지는 순간, 류지의 옆에 있던 코아노와,

주점 입구에서 막 뛰쳐나온 카라의 곁에 있던 코티가 동시에 폭발했다.

닥쳐! 누굴 데려가겠다고!

우리 형님에게 손대지 마, 이 배신자 새끼야!

코아노와 코티의 분노 어린 외침에도, 제이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류지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거래의 결정권자는 결국 마을의 보안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류지는 샷건을 내리지 않은 채, 차갑게 제이드를 응시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이드의 허세일 가능성, 기폭장치의 진위 여부, 코라의 목숨 값,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연방 보안국과의 조우. 최선의 수는 무엇인가.

류지가 마침내 입을 열어 결단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어느새 주점 입구까지 다가온 카라가 만신창이가 된 몸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은 분노나 증오가 아닌, 차갑게 가라앉은 결의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류지의 옆에 나란히 서서, 제이드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거래, 내가 하지.

카라, 너 지금...

비켜, 류지. 이건... 내 문제야.

카라는 류지의 말을 거칠게 막으며, 제이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녀의 손에는 쌍권총이 들려 있었지만, 그 총구는 제이드가 아닌 바닥을 향해 있었다.

좋아, 제이드. 네 제안, 받아들일게. 널 여기서 무사히 나가게 해주지. 그리고 마을에서 손 떼.

현명한 판단입니다, 미스 카라. 그럼...

하지만 조건이 있어.

카라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코라는... 우리가 데려간다.

안도의 미소를 짓던 제이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카라입장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제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리 없었다.

그는 콧등에 걸친 코안경을 살짝 들어올리며 차분히 대화를 이어갔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건 협상이 아닌거 같은데요?

협상 맞아. 잘 들어, 제이드. 넌 지금 여기서 코라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없어.

연방 보안국이 10분 안에 들이닥칠 테고,

코라를 인질로 삼아봤자 결국 포위될 뿐이야.

넌 그저...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잖아.

카라의 예리한 지적에 제이드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시간을 벌어줄게.

연방 보안국이 들이닥쳤을 떄, 마을을 점거한 악당은 이미 도망쳤다고 둘러댈 거야.

물론 네 신분에 대한것도 비밀로 해줄거고.

혹시라도 신분이 노출되어 추격을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넌 이 마을에서 멀리 도망칠 수 있겠지.

어때?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코라 한 명이랑, 네 목숨. 바꿀만한 거래 아닌가?

제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카라의 제안을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명백한 임무 실패. 바르톨로뮤 이사에게 어떤 질책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버티다 연방 보안국에게 체포되는 것은 최악의 수.

최소한 자신의 목숨과 남은 부하들을 건져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는 잠시 죽어가는 코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을 방패 삼아 버틸 수도 있겠지만, 저 여자의 말대로 그저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제이드는 짧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는 카라를 향해 픽 웃으며,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좋습니다, 미스 카라.

당신의 용기를 높이 사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이건 당신이 이긴 게 아니라, 제가 양보했다는것을.

그는 손에 든 기폭장치의 버튼을 바닥에 던지며, 부하들을 향해 고갯짓했다.

전원, 철수한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살아남은 제이드의 부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을 부축하고 무기를 챙기며, 주점과 골목 곳곳에서 빠져나와 광장을 가로질렀다.

무거운 군화 소리와 중장비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다, 이내 마을 외곽으로 사라져 갔다.

적막이 마을 전체에 내려앉았고 부서진 문과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든 바람만이 낮게 울었다.

이윽고, 억눌려 있던 모든 것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형님!

코라 형! 정신 차려!!! 제발!!!

코티와 코아노는 울부짖으며 피투성이가 된 코라에게 달려갔다.

코라는 의식을 잃은채 숨이 반쯤나간 상태였고,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형제는 그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으며, 그 옆의 피투성이가 된 동료들을 보자

그들의 울음은 절규로 바뀌었다.

그 처절한 울음소리를 신호탄으로, 버티고 있던 모두의 긴장이 끊어졌다.

털썩.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마데였다.

평생을 피해왔던 총성과 폭력의 한가운데서 버텨온 그의 정신력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리오와 털뭉이 역시 총을 떨어뜨리며 휘청거렸다. 모두가 극심한 피로와 탈진감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오직 류지와 카라만이 굳건히 서서 이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리오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는듯, 카라를 향해 물었다.

왜 저놈들까지 살려준 거야?

저놈들 때문에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을 뻔했어! 그런데 왜?

그의 외침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카라는 리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진실함이 담겨 있었다.

저 형제들에게서 우리를 보게됐어 리오...

그녀는 피 흘리는 코라와 오열하는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저들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이였고, 동료였어.

3년 전의 나처럼, 비틀린 진실에 눈이 멀었을 뿐이야.

어찌됏건 내가 그들의 아버지를 죽였고

여기서 또 피를 흘렸다면... 나는 나를 용서 할 수 없을거 같아...

카라의 대답에 리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이 모든게 허무하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눈앞의 참상과 마을사람들이 겪었을 공포를 떠올리면 가슴속의 분노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간신히 몸을 일으킨 털뭉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연방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곧 들이닥치는거 같던데...

그의 순수한 의문에, 침울했던 분위기 속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류지였다. 그는 어깨에 짊어진 샷건을 내려놓으며, 털뭉이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아 그거? 페이크였어.

에?

털뭉뿐만 아니라 리오, 마데, 심지어 카라마저도 놀란 눈으로 류지를 쳐다보았다.

(주점과 많이 떨어진 건물 옥상)

상황... 종료...? 다들... 무사한 거죠...?

극도의 긴장과 집중력이 한순간에 끊어지자,

몰려온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무기는 그대로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방아쇠에 걸려 있었고, 한쪽 눈은 조준경을 향해 감겨 있다.

드르렁... 쿠우울...

옥상 위로 날아든 신문 한부가 그의 머리위로 떨어지며 햇빛을 가려주었고,

무기는 마을의 평화를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잠과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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