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d on September 26, 2026

Chapter 1: 오후 11시의 신호

저녁 여덟 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친정어머니—내 기준으로는 외할머니가 되시겠지만, 어쨌든 그분—의 병문안을 가겠다며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다혁아, 밥은 냉장고에 따뜻한 거 두고 갈게."

"네, 어머니."

"늦지 않게 들어올게. 그리고 혹시 배고프면 그 김치찌개 데워 먹고."

"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언제나 그렇듯 완벽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어떤 여배우나 모델보다도 아름다운, 그런 미소였다. 어머니는 마흔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젊다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우아해지는, 이상하리만치 그런 여자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올해로 8년째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고,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고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그녀를 추앙했다. 동네에서는 '저 여자가 저렇게 아름다운데 혼자 살다니'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시장에 가면 남자들이 어머니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저 여자가 내 어머니다. 저 완벽한 여자가 나를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어머니의 외출이 유난히 신경 쓰였을까.

거실에 혼자 남아 나는 텔레비전을 켰다. 무슨 프로그램이었는지도 모르고 채널만 돌리다가, 마침내 뉴스에 멈추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아니, 사실은 어떤 앵커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생각이 많은 거야. 가만히 있으면 뭐든 괜히 잡히니까.'

어머니가 나가기 전에 남긴 말투가 걸렸다. "늦지 않게 들어올게"라는 말. 평소에는 "다녀올게, 다혁아"라고만 했었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부터 어머니는 외출할 때 그렇게 말했다. 왜 오늘은 "들어올게"라고 했을까. 아니, 그냥 생각이 많은 거지.

냉장고에 있는 김치찌개를 데워 먹으려다가도 입맛이 없어 그냥 소파에 누워 있었다. TV에서는 자정이 다가오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어머니는 아직 안 들어오셨을까.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10시 58분. 곧 11시가 되겠구나.

문득, 식탁 위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의 휴대폰이었다. 외출하실 때, 아니 잠깐. 어머니는 휴대폰을 가져가셨잖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히 어머니가 손에 쥐고 나가신 것처럼 보였는데, 식탁 위에 그녀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아까 재킷을 입을 때, 소파에 앉아 신발을 신을 때, 그 순간에 어머니는 분명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을까? 아니면 식탁 위에 놓고 나가셨을까?

진동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나는 무심코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갔다. 습관적으로, 그것도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고,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휴대폰은 잠금 상태였고, 화면에는 수신 번호와 이름이 떠 있었다.

"차장님"

차장님? 어머니의 회사에 계신 분인가? 아니, 어머니는 지금 회사를 다니지 않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처음에는 식당에서 일하셨고, 그다음에는 옷가게에서 일하셨다. 지금은 작은 부티크에서 일하고 계신다. 그런데 차장님이라.

진동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그 이름 석 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장님. 이상하리만치 낯선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연락처에는 '차장님'이라고 떠 있는, 하지만 나는 그 차장님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그 이름.

나는 전화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받지 않으면 끊기겠지. 하지만 손가락은 어느새 수화기 버튼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니, 손가락이 아니라 무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아니, 정확히는 휴대폰 스피커 너머로 낮고 거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도 휴대폰을 두고 나갔네. 그 성격 죽어도 안 고치지."

그는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니다. 나는 침을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밤, 평소처럼. 11시. 잊지 마."

그리고는 그대로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며, 화면에 '통화 종료'라는 글씨가 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평소처럼'? '11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이 몇 시라고, 어머니는 밖에 계시는데.

나는 다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통화 기록 목록을 열자, '차장님'이라는 이름이 오늘 저녁 11시 3분의 기록과 함께 찍혀져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통화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기록이? 아니다. 나는 스크롤을 쭉 올려보았다. 손끝이 떨렸다.

차장님. 차장님. 차장님.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11시에 걸려온 통화 기록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오늘. 어제. 그제. 지난주. 지난달. 흔적조차 없이 밀려나는 기록은 아니었다. 특히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장님은 항상 '오늘 11시'라는 시간에 걸려왔다. 그리고 통화 시간도 항상 1~2분 남짓.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아니, 식탁 위가 아니라, 힘없이 손에서 흘러내렸다. 소파에 다시 주저앉아, 나는 멍하니 맞은편 벽만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평소처럼. 평소처럼. 오늘 밤, 평소처럼. 그 사내는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고, 매일 밤 11시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며 '평소처럼'을 말한다. 그러니까, 이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하는 말투가 아니다. 이건 특별한 관계에서 오가는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 나는 어머니에게 남자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고 스스로 말해왔다. 오히려 나는 어머니가 행복해하신다면, 그게 무엇이든 존중해 드렸을 거다. 그런데 왜 지금, 이게 이렇게 불쾌하지? 왜 이게 이렇게 내 가슴을 옥죄어 오는 거지?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럼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신 걸까. '친정어머니'를 보러 가신다고 하셨지만, 외할머니는 이미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 나는 혼자서 고개를 젓는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지 오래됐는데, 어머니가 "병문안을 가겠다"고 했던가? 분명히 "엄마가 조금 아프시다"고 했다. "병문안을 가겠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어머니는 꽤 오래전부터, 나에게 '외할머니'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다른 이유로 집을 비웠던 것일까. 나는 휴대폰 화면의 통화 기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매일 밤 11시. 오늘 11시.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그 약속을 아는 것처럼 외출하셨다. 그러니까, 이건 우연이 아니라, 마치 수신자가 오늘 밤 11시에 무언가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 통화는 그 약속을 확인하는 절차였다는 것이다.

나는 소파에 깊게 몸을 파묻으며, 텔레비전 화면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11시 04분. 방금 그 사내가 말한 '오늘 밤, 평소처럼'이 이뤄지고 있을 시간이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계신 걸까.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잠금을 풀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휴대폰에는 지문 인식과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나는 문득 떠오른 몇 가지 숫자를 눌러보았다. 아버지의 생일. 내 생일. 어머니 생일. 하지만 모두 틀렸다.

마지막으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결혼 기념일을 눌렀다. 화면이 열렸다.

잠금이 풀렸다.

나는 어머니의 휴대폰에서 그 이름을 다시 검색해보기로 했다. 통화 기록의 '차장님'을 눌러 상세 정보를 보니, 메시지 앱과도 연동되어 있었다. 하지만 메시지는 열 수가 없었다. 별도의 잠금 장치가 있었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당황해서 휴대폰을 식탁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아니야, 잠깐. 어머니는 외출하셨잖아. 그럼 누가?

내가 놀라서 고개를 돌렸을 때, 거기 서 있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녀는 여전히 외출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상기된 기운이 살짝 흐르고 있었다.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혁아, 엄마 왔어. 조금 일찍 끝나서."

그녀의 시선은 식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혼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네, 어머니. 다녀오셨어요."

어머니는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서, 이상하게 들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김치찌개 먹었니?"

"네."

"녹차는 얼마나 됐니?"

"응, 꽤 됐어요."

대화는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어머니가 나에게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후 11시, 어머니의 휴대폰에 걸려오던 그 사내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오늘 밤, 평소처럼.'

내일도, 모레도, 그 사내는 계속해서 오후 11시에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미친 듯이 그 차장님이 누군지 파헤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과연 진짜로 '외할머니'를 보러 가신 것인지, 아니면 '차장님'을 만나러 가신 것인지.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11시, 그 약속은 이미 성사되었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나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내 시선은, 그 위에 아무것도 없는 빈 하얀 표면 위를 맴돌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빈 천장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자리 잡은 그 사내의 목소리와 어머니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그 말은 돌고 돌아 내 뇌리에 박혀 있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찼다.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거실로 나가 부엌에서 물 한 잔을 마신 뒤, 나는 어머니의 방 앞을 지나쳤다. 방문은 닫혀 있었고, 문틈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이 켜져 계시나? 이런 시간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오셨을 때 나는 이미 방에 들어가 있는 척했고, 엄마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지금 새벽 두 시가 넘도록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를 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기다리고 계시거나, 아무튼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숨을 죽였다. 문틈으로는 은은한 불빛 외에도, 가끔씩 옷깃이 스치는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넘기는 듯한 소리. 어머니가 무언가를 꺼내어 보고 계신가 보다.

손을 들어, 나는 문을 두드리려다 멈추었다. 두드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떠나지도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 문틈에 비치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녀가 이쪽을 향해 걷고 있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몸을 돌려 복도 구석에 몸을 숨겼다.

삐걱—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혁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녀는 잠시 복도에 서서 주위를 살피더니, 혼잣말처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안 오나 보지, 뭐."

그녀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조금 열어 두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문고리를 잡았을 때, 이미 닫혀 있던 문이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열렸다. 문이 열린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안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그녀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문을 잠그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실수였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게는 그게 결정적인 신호였다.

나는 다시 어머니의 방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대담하게,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침대에 앉아 계셨고, 무릎 위에는 낡은 사진첩을 펼쳐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끝은, 사진 속 어떤 얼굴을 부드럽게 더듬고 있었다. 사진첩은 아버지와의 결혼 앨범이었다. 그런데 그 앨범을 보면서 어머니의 표정은, 슬프다기보다는 오히려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

사진첩을 덮은 어머니는, 이번에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핸드폰을 하나 꺼내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 식탁에 놓여 있었던, 그 휴대폰이 아니라,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은색의 낡은 폴더폰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등을 돌려 다시 내 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숨도 쉬지 못한 채, 어머니의 손에서 그 낯선 휴대폰이 꺼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화면이 켜지자, 희미한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표정은, 참을 수 없는 쾌락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은은하게 뒤틀려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그 완벽한 어머니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폴더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아무리 봐도 낯선 번호였다. 어머니는 수화기를 귀에 대고, 몇 초간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은 안 되겠어. 일이 생겨서."

잠시 침묵. 상대방이 뭐라 말하는지, 나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에, 가까스로 참아내던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내일, 같은 시간에."

그리고 전화를 끊은 그녀는, 다시 그 낡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이 자리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발을 떼려는데, 그 순간—

삐리릭— 방금 어머니의 낡은 폴더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혁아."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울음을 참는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나는 문틈에서 완전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들어 복도 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와, 다혁아. 거기서 멍하니 있지 말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 앞에 서 있는 내가 보여주는 태도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방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나는 문틈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내가 평생 알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머니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다만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듯한 다리와, 무너진 넥타이만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머니의 손끝은 그 남자의 허리춤에 닿아 있었고, 그녀의 머리는 아래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숨을 고를 수가 없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무엇이든, 단지 밀어 넣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문을 밀어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떠나지도 못한 채,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그 안에서 어머니의 낮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음…… 츄읍…… 쪽…….”

그 소리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그렇게 소리를 내는 분이 아니었다. 항상 차분했고, 조용했고, 웃음소리조차 삼가는 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입에서는, 천박할 정도로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겹쳐 들렸다. 낮고, 헐떡이고, 참을 수 없는 쾌락에 사무친 듯한 그 목소리. 그리고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한 번 더 깊게, 머리를 숙였다. 그녀의 목덜미에, 그가 만든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마를 문에 대고, 코끝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떡해야 하지? 지금 이 안에서, 어머니는 분명, 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것일까.

몇 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소리는 이어졌고, 어머니의 신음은 점점 더 커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손을 문손잡이에서 떼 조용히, 총을 맞은 것처럼 몸을 돌려 제발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드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날 밤, 내 머릿속에서 그 소리는 지워지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미소를 지은 채 밥을 떠주는 어머니가 앉아 계셨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 완벽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잠은 잘 잤니?”

“……네.”

거짓말이었다. 어머니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내 그릇 위에 김치를 얹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밥을 먹는, 그 평화로운 아침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보았다. 옷깃에 반쯤 가려진, 선명한 붉은 자국. 그것은 화장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어젯밤의 흔적이었다.

그 자국을 보며, 나는 커피 잔을 들어 입에 댔다. 쓴 맛이 혀끝을 감쌌지만, 나는 그 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어머니의 목덜미에 찍힌 그 자국만이, 계속 시야에 어른거렸다.

“설거지 하고 나갈게. 너도 학교 가야지.”

어머니가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은, 현관에 놓인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향했다. 마음이 조여왔다. 그래도 나는 발을 내디뎠다.

휴대폰은, 평소와 다름없이, 현관 신발장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슬쩍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잠금 화면에 그 날짜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늘, 그리고 어제, 그리고 지난주, 한 달 내내. 어머니는 자신의 비밀번호를 바꾼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생일. 그래서 나는, 잠금을 풀 수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위치 추적 앱을 여는 것은, 몇 초면 충분했다. 어머니는 그 앱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무심코 설치해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그 앱이 실시간으로 어머니의 위치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면 속 지도 위에, 파란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 위치한 한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이, 어머니가 새벽까지 머물렀던, 그곳일 것이다.

나는 그 파란 점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나는 곧장 학교 가방을 챙겨 어깨에 멨다.

“다녀오겠습니다.”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나왔다. 부엌에서 어머니의 대답이 들려왔다.

“응, 조심해서 다녀와.”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나는 깊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어머니의 비밀. 그리고 그녀가 지키려 했던, 나의 미래. 하지만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겪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가슴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금기된 욕망인지도 모르는 그 무언가가. 나는 그날 아침,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 파란 점의 정체를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그곳이,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어머니의 지우개가 되어주기로 했다. 그녀를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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