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쇠사슬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강민준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아니, 뜨려고 했다. 눈꺼풀이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입안은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것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뭐야, 이게.'
천천히 시야가 돌아왔다. 흐릿하게 보이던 세상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민준은 자신이 이상한 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무 우리였다.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우리. 동물원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거. 바닥은 딱딱한 흙바닥이었고, 어딘가에서 짚 썩는 냄새가 났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람 냄새. 땀 냄새.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역겨운 악취가 뒤섞여 있었다.
민준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가 손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멈췄다.
쇠사슬이었다.
"뭐... 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민준은 손목을 들어올렸다. 녹슨 철로 만든 수갑 같은 게 양 손목에 채워져 있었고, 그것들은 우리의 기둥에 연결된 쇠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이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공황이 밀려왔다. 민준은 본능적으로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철컥거리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어났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고개를 돌렸다. 같은 우리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세 명. 모두 자신과 비슷하게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중 한 명, 스물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민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은 수척했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민준의 질문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냉소에 가까웠다.
"노예 시장."
"...뭐?"
"노예 시장이라고. 믿기지 않겠지만, 여기는 그런 곳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노예 시장이라니. 21세기에 노예 시장이라고? 민준은 남자가 미쳤거나, 아니면 자신이 아직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목의 쇠사슬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차갑고 무거웠다.
"장난... 치는 거지?"
"장난 같아 보여? 이게?"
남자가 자신의 쇠사슬을 들어올렸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우리 안에 메아리쳤다.
민준은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생각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환당한 지 얼마나 됐어?"
다른 사람이 물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여자였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침착했다.
"소환?"
"그래. 너도 소환자잖아. 갑자기 빛에 휩싸이고, 정신 차려보니까 이상한 곳에 있었을 거야."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정확히 그랬다. 퇴근길이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눈이 부셨다. 빛이 온 세상을 삼켰고, 그다음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깨어났을 때는 여기였다.
"나도 그랬어. 우리 모두 그랬고."
여자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
"소환자는 이 세계에서 귀하다고 하더라. 능력이 뛰어나서. 그래서 비싸게 팔린대."
"팔린다고?"
"응. 노예로. 며칠 후에 경매가 있어. 그때 우리 모두 팔릴 거야."
민준은 숨이 막혔다. 팔린다고? 사람을 팔아? 이게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미쳤네..."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다들 들었을 것이다.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야? 대체 무슨 세계인데..."
"우리도 잘 몰라."
처음 말했던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사흘 전에 깨어났어. 그때 이미 여기 있었지. 간수들한테 물어봤는데 대답도 안 해주더라.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들었어."
남자는 우리 밖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쪽 봐. 사람들."
민준은 고개를 돌렸다. 우리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고, 어떤 이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중세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복장들. 그리고 그중 몇몇은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진짜 검.
"이 세계는...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래."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간수 중 한 명이 자랑하듯이 말하더라. 자기가 마법사라고. 도망치려고 하면 죽여버릴 거라고."
마법. 그 단어가 민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마법이라니. 말도 안 되지만, 지금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쇠사슬에 묶여 우리에 갇혀 있는데 뭐가 말이 되나.
"탈출은... 생각 안 해봤어?"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간절했다.
"해봤지."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남자였다. 나이는 서른 정도? 얼굴에 상처가 있었다.
"첫날 시도했어. 간수가 밥 주러 왔을 때 덤볐지. 결과는... 이거."
그는 얼굴의 상처를 가리켰다.
"마법이야. 진짜로. 손만 휘두르는데 불이 튀어나왔어. 바로 쓰러졌지. 다음 날 깨어났을 때 이 상처가 있었고."
민준은 말문이 막혔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안 해. 탈출 시도. 의미 없으니까."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침묾. 절망의 무게가 우리 안을 짓눌렀다.
민준은 벽에 등을 기댔다. 나무가 거칠게 등을 긁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니, 복잡하다는 표현도 부족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막막했다.
'이게 진짜야? 꿈이 아니라?'
손목의 쇠사슬을 만져봤다. 차갑고 딱딱했다.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기울고 있었다. 우리 사이로 들어오던 햇빛이 점점 약해졌다.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밥 시간이다."
안경 쓴 여자가 말했다.
과연, 곧 발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부츠 소리. 두 명의 남자가 우리 앞에 섰다. 둘 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곤봉을 차고 있었다. 간수들이었다.
"밥이다. 조용히 받아먹어."
그중 한 명이 말했다. 목소리는 거칠었다. 그는 우리 안으로 나무 그릇들을 밀어 넣었다. 그릇 안에는 묽은 죽 같은 게 담겨 있었다. 냄새는 별로였다.
"물."
다른 간수가 물통을 던졌다. 나무 물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물이 조금 튀었다.
"내일 경매다. 얌전히 있어. 문제 일으키면 매 맞는다."
그 말을 남기고 간수들은 가버렸다.
민준은 그릇을 들여다봤다. 식욕이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배는 고팠다. 언제부터 안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속이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먹어. 안 먹으면 더 힘들어."
처음 남자가 말했다. 그는 이미 죽을 떠먹고 있었다.
민준은 천천히 죽을 한 입 떠먹었다. 맛은 없었다. 아니, 맛이 거의 없었다. 밍밍하고 텁텁했다. 하지만 먹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을 다 먹고, 물을 마셨다. 물은 차가웠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조금이나마 현실을 실감나게 했다.
"내일 경매라고 했지?"
민준이 물었다.
"응. 매달 이맘때쯤 경매가 열린대. 노예들을 사고파는."
안경 쓴 여자가 대답했다.
"우리도 내일 팔릴 거야. 소환자는 비싸게 팔린다고 했으니까... 아마 귀족이나 부자한테 팔리겠지."
"팔리면... 어떻게 되는데?"
"모르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를 거야."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좋은 주인이면... 뭐, 괜찮을 수도 있겠지. 나쁜 주인이면..."
말을 잇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민준은 다시 벽에 기댔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우리 밖 어딘가에서 횃불 빛이 희미하게 비쳤지만, 우리 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내일... 경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빴다. 사람이 물건처럼 팔린다니. 그것도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피할 방법도 없었다.
그때였다.
눈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민준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반투명한 창이 공중에 떠 있었다. 파란빛을 띤 창. 그 안에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시스템 활성화]
[사용자: 강민준]
[히든 퀘스트 발견: 첫 주인에게 팔리기]
"뭐야, 이게?"
민준은 중얼거렸다. 손을 뻗어 창을 만져보려고 했지만, 손이 그냥 통과했다. 홀로그램 같은 거였다.
"뭐가?"
옆에서 남자가 물었다.
"이거... 안 보여?"
민준이 창을 가리켰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민준은 얼버무렸다. 창은 여전히 그의 눈앞에 떠 있었다.
[히든 퀘스트: 첫 주인에게 팔리기]
[설명: 노예 경매에서 낙찰되어 첫 주인을 맞이하십시오.]
[보상: ???]
[실패 조건: 없음]
퀘스트라니.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였다. 민준은 멍하니 창을 바라봤다. 이게 뭔 상황이지? 시스템? 퀘스트?
'소환자라고 했지. 그럼 혹시...'
게임 같은 세계? 아니면 능력? 민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웹소설이나 만화에서 본 것 같았다. 이세계에 소환되면 시스템이 생긴다는 설정. 능력을 얻는다는 그런 이야기들.
'설마 나도?'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공포가 아니라 기대감이었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만약 능력을 쓸 수 있다면?
민준은 조용히 창을 살폈다. 다른 메뉴는 없을까? 생각만으로 조작할 수 있을까?
'스테이터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창이 바뀌었다.
[스테이터스]
[이름: 강민준]
[레벨: 1]
[직업: 없음]
[능력: 잠김]
[스킬: 없음]
진짜였다. 정말로 시스템이 있었다. 민준은 흥분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면 안 됐다. 이건 비밀로 해야 했다.
'능력이 잠겼다고? 어떻게 풀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은 더 이상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일 경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희망이 생겼다. 시스템이 있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
아침이 밝았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우리를 발로 차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 이 노예 새끼들아."
간수였다. 어젯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더 덩치가 컸고, 얼굴에 흉터가 있었다.
"경매 시간이다. 준비해."
간수들이 우리 문을 열었다. 그들은 한 명씩 쇠사슬을 풀고, 대신 목에 다른 쇠사슬을 채웠다. 목줄이었다. 개한테 채우는 그런 거.
민준의 차례가 왔다. 간수가 거칠게 그의 목에 쇠사슬을 채웠다. 차갑고 무거웠다. 숨쉬기가 조금 불편했다.
"움직여."
간수가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민준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리가 저렸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탓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목줄에 묶여 한 줄로 서게 됐다. 마치 죄수들처럼.
"걸어."
간수들의 명령에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를 나와 길을 따라갔다. 주변에는 다른 우리들도 있었다. 그 안에도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모두 같은 처지였다.
길을 걷는 동안 민준은 주변을 살폈다. 건물들이 보였다. 나무와 돌로 만든 건물들. 지붕은 기와나 짚으로 되어 있었다. 정말로 중세 같은 세계였다.
사람들도 지나다녔다. 그들은 노예들을 보고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익숙한 광경인 모양이었다.
'여기는... 정말 다른 세계구나.'
실감이 났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곧 큰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한가운데 나무로 만든 단이 있었다. 경매대였다.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많았다. 수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간수들은 노예들을 광장 한쪽에 세웠다. 민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조용히 있어. 소리 지르거나 문제 일으키면 죽는다."
간수가 경고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경매가 시작됐다.
한 남자가 경매대에 올랐다. 뚱뚱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경매사인 모양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도 좋은 물건들을 준비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크고 쾌활했다.
"첫 번째 상품입니다! 튼튼한 젊은 남자! 농사일에 적합합니다!"
한 남자가 경매대로 끌려갔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시작가 10골드!"
사람들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가격이 올랐다. 15골드, 20골드, 25골드.
"25골드에 낙찰!"
첫 번째 노예가 팔렸다. 그는 새 주인에게 끌려갔다.
이런 식으로 계속됐다. 한 명씩 경매대에 오르고, 팔렸다. 민준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이 물건처럼 팔리는 모습. 현실 같지 않았다.
"다음은 특별한 상품입니다!"
경매사가 외쳤다.
"소환자입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귀한 분들이죠! 능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민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차례가 온 것이다.
간수가 그를 끌고 경매대로 향했다. 민준은 저항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쇠사슬이 목을 조였다.
경매대에 올랐다. 수십 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마치 동물원의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건강한 젊은 소환자! 시작가 100골드!"
100골드. 일반 노예보다 훨씬 비쌌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120골드!"
누군가가 외쳤다.
"150골드!"
다른 사람이 가격을 올렸다.
민준은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가격이 올라가는 걸 듣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수치스러웠다. 화가 났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0골드!"
가격이 계속 올랐다.
"250골드!"
"300골드!"
그때였다.
"500골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차분하고 단호했다.
광장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민준도 그쪽을 봤다.
군중 사이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검은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 위압감 같은 게 느껴졌다.
"500골드라니! 대단한 금액입니다!"
경매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더 높은 가격 부르실 분 없습니까? 500골드! 한 번! 두 번!"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더 부르지 않았다.
"세 번! 낙찰입니다!"
망치가 내려쳤다.
민준은 검은 후드의 여자에게 팔렸다.
간수가 그를 경매대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여자에게 데려갔다.
여자는 가까이서 봐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후드가 깊게 눌러져 있었다.
"쇠사슬을 풀어줘."
여자가 간수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풀어줘. 내가 산 물건이잖아."
간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쇠사슬을 풀었다. 민준의 목에서 무거운 쇠사슬이 떨어졌다.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여자는 민준을 똑바로 쳐다봤다. 후드 아래 그림자 속에서 눈빛만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계약을 하나 제안하겠어."
여자가 말했다.
"나를 따라와. 그럼 자유를 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조건?"
민준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를 위해 일해. 내가 시키는 대로. 그럼 노예가 아니라 동료로 대해주지."
여자는 손을 내밀었다.
"어때? 받아들일 거야?"
민준은 그 손을 바라봤다. 선택지가 있었다.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거절하면? 다시 노예로 살아야 했다. 아니면 더 나쁜 주인에게 팔릴 수도 있었다.
선택은 명확했다.
민준은 여자의 손을 잡았다.
"좋아. 받아들일게."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이야."
그녀는 돌아섰다.
"따라와."
민준은 그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광장을 빠져나가며, 뒤를 한 번 돌아봤다. 경매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다른 노예들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건 민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앞을 봤다. 검은 후드의 여자가 앞서 걷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일단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민준은 여자를 따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어떤 시작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 Previous
Next →
Comments (0)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share your thoughts!
Comments (0)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share your thou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