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조수석
주차장 바닥에 물웅덩이가 남아 있었다. 오전에 내린 비가 아스팔트 틈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고여 있는 모양새가, 왜 학교 측이 배수 공사를 몇 년째 미루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준호는 발끝으로 물을 피해 걸으며 번호판을 확인했다. 검은 세단. 민서가 어머니 차라고 했던 그 차다.
조수석 문을 열자 실내에서 인공적인 향이 확 올라왔다. 자동차용 방향제치고는 너무 진했다. 지연은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 준호가 안전벨트를 매는 동안에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지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어를 넣고 차를 빼는 동작이 능숙했다. 주차장 출구에서 경비원이 고개를 숙이자 지연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캠퍼스 정문을 빠져나와 좌회전. 시내 방향이다. 준호는 창밖으로 흐르는 가로수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민서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잘했네."
그 말투가 칭찬인지 확인인지 구분이 안 됐다. 지연은 백미러를 한 번 조정하더니 이내 준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운전 중에 옆을 보는 습관은 좋지 않다고, 누가 알려줬어야 했다.
"민서가 고등학교 때 얘기 들었어?"
"어느 정도는요."
"어느 정도." 지연이 그 말을 되씹었다. "걔가 나한테 얘기하는 건 많지 않아. 원래 그런 애야. 중학교 때부터 그랬어."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지연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손톱으로 운전대를 두드렸다. 규칙적인 소리였다.
"고1 때였나. 걔가 처음으로 나한테 소리를 지른 게. 내가 남자친구 집에 갔다는 걸 알았을 때."
준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민서가 그런 과거를 가진 줄은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민서는 항상 밝았고, 항상 앞만 보는 애였다.
"그 뒤로도 몇 번 있었지. 내가 누구 만나는지 일일이 캐물었어. 엄마가 창피한 건지, 걱정되는 건지." 지연이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너는 안 그러냐? 민서가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서로 믿으니까요."
"믿음." 지연은 그 단어를 입에 굴리는 듯했다. "귀엽다."
차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지하 주차장이 아니라 지상 주차장이다. 지연은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내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앉아 있었다.
"올라와."
명령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지연은 9층 버튼을 눌렀다. 준호는 층수 표시판을 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했다. 카톡으로 온 메시지 하나 때문이었다. '내일 시간 돼? 민서 엄마인데, 잠깐 볼 수 있을까.' 답장을 안 하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현관문이 열리자 좁은 복도가 나왔다. 신발장 위에 민서의 어릴 적 사진이 액자에 들어 있었다. 교복 입고 웃는 모습도 있었다. 준호는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았다.
"안방으로 들어가."
거실을 지나면서 준호는 주방 쪽을 힐끗 봤다. 싱크대에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커피잔인지 찻잔인지 모를 잔이었다. 거실 소파에는 담요가 구겨져 있었고, TV는 꺼져 있었다.
안방 문을 열자 침대가 보였다. 흰 시트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방 안에는 차 안에서 맡았던 그 향이 더 진하게 배어 있었다. 준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스프링이 삐걱 소리를 냈다.
지연은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철컥.
잠금장치 걸리는 소리였다. 준호의 어깨가 굳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앉아 있어."
지연이 손짓으로 제지했다.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짧고 분명한 동작이었다. 준호는 허리를 반쯤 세운 자세에서 멈췄다.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아니면 좁게 느껴지는 건지도 몰랐다. 창문은 커튼이 쳐져 있었고, 옷장 하나와 화장대 하나가 전부였다.
지연은 준호를 보지 않고 옷장 쪽으로 걸어갔다.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있었다.
문고리는 등 뒤에 있었고, 지연은 등 뒤에 서 있었다.
옷장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지연은 무언가를 꺼내더니 침대 위로 팔을 뻗었다. 사진들이었다. 인화지 몇 장이 시트 위에 흩어졌다. 오래된 것들이었다. 색이 바랜 것도 있었고, 모서리가 접힌 것도 있었다.
준호는 저도 모르게 그중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민서였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웃고 있었다. 옆에는 지연이 있었다. 지금보다 젊었지만, 눈매는 그대로였다.
"그건 유치원 졸업식."
지연이 침대 맞은편에 서서 팔짱을 꼈다. 준호는 다른 사진들을 훑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운동회. 생일상 앞에서 촛불을 부는 민서. 전부 둘이었다. 어머니와 딸. 그 사이에 누군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본 적 있어?"
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민서도 안 물어봐. 한 번도." 지연이 침대 위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민서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상을 받는 사진이었다. "걔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가족신상카드를 쓰는데, 아버지 칸을 비워냈대. 선생님이 왜 안 썼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고."
지연은 그 사진을 다시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사진 속 민서 옆 빈 공간을 짚었다.
"여기.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데, 없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사과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듣고 있어야 하는 건지.
"내가 혼자 키웠어. 아무 도움도 안 받고." 지연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였다. "그래서 민서한테는 내가 전부야. 아버지도 없고, 형제도 없고. 나밖에 없어."
그 말이 끝나자 지연은 자기 블라우스 깃으로 손을 올렸다.
첫 번째 단추가 풀렸다. 두 번째 단추도 풀렸다. 준호는 시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침대 시트를 내려다봤다. 세 번째 단추 소리가 났다. 옷깃이 벌어지면서 쇄골이 드러났다.
"고개 들어."
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준호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낮았다. 준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연의 블라우스는 어깨 한쪽이 흘러내려 있었다. 속살이 드러난 게 아니라, 살갗 자체가 드러난 거였다. 목선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선이 방 안 조명 아래 매끄럽게 빛났다.
준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왜 눈을 피해?"
"그게……."
"민서 엄마라고 생각해서?"
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지연이 한 걸음 다가왔다. 침대와 옷장 사이의 좁은 공간이 더 좁아졌다.
"민서가 널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아?" 지연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 애가 널 얼마나 의지하는지, 네가 걔한테 어떤 존재인지."
한 걸음 더.
"그리고 네가 얼마나 위험한 위치에 있는지."
준호의 손끝이 저렸다. 위험하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위험하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지.
준호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다리가 움직였다. 그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고리까지 두 걸음. 한 걸음.
하지만 지연이 더 빨랐다.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지연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 등으로 문을 막고, 오른팔을 벽에 짚었다. 준호의 얼굴 바로 앞이었다. 지연의 팔과 벽 사이로 빠져나갈 공간이 없었다.
"어디 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준호는 뒷걸음질 쳤다. 침대 모서리에 종아리가 부딪혔다.
지연은 팔을 벽에서 떼지 않았다.
"문 열고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방 안 공기가 무거웠다.
커튼 틈으로 저녁 빛이 새어 들어왔다.
지연은 벽에서 팔을 내렸다. 대신 준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견딜 만한 종류가 아니었다. 준호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경영학과 2학년. 학번 21학번. 맞지?"
준호의 눈이 커졌다.
"부모님이 학교 정문에서 십 분 거리에 식당 하시지. 국수랑 만두 파는 곳. 가게 이름이…… 뭐였더라. 아, '소담집'."
지연이 웃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 웃음이었다.
"월요일은 쉬고, 일요일은 오후 두 시에 닫아. 단골이 많아서 주말엔 대기 줄이 길어. 내가 몇 번 가봤거든."
준호는 손이 떨리는 걸 주먹을 쥐어 감췄다. 지연이 자기 부모님 가게 영업시간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학번보다 더 무서웠다. 학번은 학교 시스템 어디서든 나오는 정보지만, 가게 영업시간은 직접 발로 뛰어야 아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아세요?"
"민서가 알려줬을까?"
지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민서는 너에 대해 나한테 말 안 해. 한 번도." 지연의 목소리에 서운함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내가 알아낸 거야. 내 방식대로."
그녀는 침대 옆 화장대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준호 쪽으로 내밀었다.
캡처 화면이었다.
준호와 민서의 카톡 대화였다. 어제 나눈 메시지였다. 민서가 보낸 '오늘 저녁 뭐 먹었어?'라는 말과, 준호가 답한 '집에서 라면'이라는 문장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아래로 스크롤하면 더 있었다. 지난주 대화도 있었다. 민서가 보낸 이모티콘까지 전부.
준호는 화면을 뚫어지게 봤다. 이건 분명히 자신과 민서 둘만 볼 수 있는 대화창이었다.
"민서 폰에서 본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
지연은 휴대폰을 다시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
"민서가 나한테 폰을 보여줄 이유가 없잖아."
준호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민서가 보여준 게 아니라면, 지연이 본 것이다. 민서 모르게.
"설마……."
"설마 뭘."
지연이 준호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한 걸음이 아니라 두 걸음이었다. 준호의 무릎과 지연의 무릎이 거의 닿을 거리에까지 왔다.
그녀가 오른손을 들어 준호의 뺨에 대었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엄지로 광대뼈를 따라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준호는 피할 타이밍을 놓쳤다.
"민서를 지키고 싶으면."
목소리가 귓가에 닿을 정도로 낮았다.
"내 말을 들어."
준호의 숨이 멈췄다.
방 안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지연의 손바닥이 아직 뺨에 닿아 있었다. 엄지는 이제 턱 밑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준호는 그 손을 쳐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팔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가 동시에 돌아갔다.
민서의 얼굴. 아까 본 사진들 속 어린 민서. 고등학교 때 어머니한테 소리 지르던 민서. 그리고 지금, 자기 앞에 서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여자.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들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준호는 숨을 삼켰다. 목구멍에서 걸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턱을 몇 센티미터 내리는 것에 불과했지만, 지연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지연은 손을 거두었다.
준호는 그제야 숨을 쉬었다. 어느새 참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지연은 한 걸음 물러나 준호를 내려다보았다. 벽에 기대선 자세로, 팔짱을 끼고, 침대 위 사진들을 흘끗 봤다. 그 시선이 다시 준호에게 돌아왔다.
"잘 생각했어."
준호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던 빛이 한층 붉어져 있었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연은 옷장 쪽으로 걸어가 블라우스 단추를 다시 채웠다. 첫 번째 단추부터 마지막 단추까지, 순서대로, 천천히.
준호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는 척했다.
방 안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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