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문이 열리던 순간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집 안은 조용했고, 복도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정우는 방문을 잠그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들어올까 봐 확인하는 버릇이 생긴 건 꽤 오래됐다. 아빠는 해외 출장 중이었고, 누나는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를 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사실 매일 보는 사진들이라 이제는 외울 정도였지만, 정우는 여전히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을 느꼈다. 갤러리 최상단에 있는 폴더, 이름도 없이 아이콘만 덩그러니 있는 그 폴더를 터치했다.

사진들이 펼쳐졌다. 대부분 수영장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작년 여름, 가족들이랑 바닷가에 갔을 때도 몇 장 있었지만 주로 동네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더 많았다. 엄마가 요가 강사 일을 하면서 수영도 꾸준히 다니니까 자연스럽게 수영복 사진이 생겼고, 그 사진들을 찍은 사람은 정우였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가족사진 찍듯이 찍었는데, 언젠가부터 정우는 엄마의 몸매가 유난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날 지하철에서 철수랑 같이 본 여자가 생각났다. 검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 허리 라인이 정말 예뻤다. 철수는 "야, 저거 완전 환상이다"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고 정우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가 엄마였다는 걸 알았을 때 철수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정우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예쁘다는 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정우는 가장 최근 사진을 확대했다. 엄마가 수영장에서 나와 타월로 머리를 닦고 있는 사진이었다. 물방울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고, 초록색 비키니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엄마는 키가 크지 않은 편인데 다리가 길어 보였다. 배에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끈했고, 팔과 어깨 라인도 요가를 오래 해서 그런지 군더더기가 없었다.

핸드폰 화면 속 엄마는 누군가의 엄마 같지 않았다. 오히려 철수가 말한 대로 환상적인 몸매를 가진 어떤 여자였다. 정우는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손가락은 이미 다음 사진을 터치하고 있었다.

다음 사진은 엄마가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서 멀리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모습이 특히 예뻤다. 가슴 라인이 비키니 위로 살짝 올라와 있었고, 엄마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우는 그 사진을 찍을 때 엄마가 "뭐 찍어?"라고 물었던 걸 기억했다. 그냥 풍경 찍는다고 둘러댔는데 엄마는 "그래, 예쁘게 찍어"라고 웃어줬다.

정우는 점점 거칠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손이 무의식적으로 바지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핸드폰을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바지 지퍼를 내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귀에서 혈액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화면 속 엄마가 정우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사진 속 시선은 정확히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 카메라를 든 사람이 정우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을까. 찍힐 때는 몰랐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정우가 이 사진을 보고 있다는 걸 안다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정우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흡이 더 거칠어졌고, 이불이 살짝 움직였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면서 사진 속 엄마의 몸매에 시선이 고정됐다. 특히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이 자꾸만 눈길을 끌었다. 엄마가 수영장에서 걷는 모습, 팔을 휘저으며 자유형을 하는 모습, 물 밖으로 나와서 머리를 터는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정우는 점점 속도를 높였다. 숨소리가 커졌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손이 긴장한 듯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몸의 감각이 핸드폰 화면과 손끝에 집중됐다. 창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도, 복도에서 나는 냉장고의 윙윙거리는 소리도 모두 멀어졌다. 오직 사진 속 그 여자, 아니 엄마만이 존재했다.

그 순간이었다.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잠겨 있었는데도 손잡이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정우의 몸이 순간 굳었다. 손이 멈췄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누구지. 아빠는 없고, 누나는 친구 집인데.

"정우야, 너 안 자?"

엄마 목소리였다. 정우는 핸드폰 화면을 끄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불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또 한 번 손잡이가 돌아갔다.

"문 왜 잠갔어? 열어 봐."

정우는 황급히 바지를 올리고 핸드폰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너무 떨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핸드폰이 침대 위로 떨어질 뻔했고, 겨우 집어서 이불 속에 감췄다.

"정우, 듣고 있어?"

엄마 목소리에 약간의 날카로움이 섞였다. 정우는 "네, 네"라고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침을 삼키고 다시 말하려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

열쇠. 엄마가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연 거였다. 정우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방문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마스터키가 있었고, 엄마가 항상 그것을 갖고 다닌다는 걸 정우는 알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 복도 불빛이 길게 들어왔다. 엄마의 실루엣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잠옷 차림이었고, 머리는 느슨하게 묶고 있었다. 엄마가 방 안을 살펴보듯 둘러봤다.

"뭐 하고 있었어? 안 자고."

정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불 속에 손을 꽉 쥐고 있었고, 핸드폰은 엄한 위치에서 발목 근처에 걸려 있었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엄마가 들을까 봐 두려웠다.

엄마가 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소영이 방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복도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을 때, 정우는 엄마의 시선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자신의 손이었고, 그 손이 있던 위치였다. 정우는 이미 이불을 허리까지 끌어올렸지만 그건 충분하지 않았다. 엄마는 분명히 봤다.

아니, 애초에 엄마는 문을 열자마자 모든 걸 봤을 거다. 정우가 이불 위에 반쯤 걸쳐진 자세로, 핸드폰을 들고, 한 손은 어디론가 향해 있었던 그 순간을.

소영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마치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모든 혈색이 사라졌다. 입술이 하얗게 질렸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우는 그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놀라거나 충격받은 모습은 몇 번 봤지만, 이렇게 말라비틀어지는 표정은 처음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창백함이 완전히 가시기도 전에 볼부터 귀까지 핏기가 몰려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뺨을 때린 것처럼 진홍색이 번져나갔다. 엄마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이불을 꽉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소영이 성큼 다가왔다. 침대 옆에 서서 정우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정우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놀랍게도 힘이 꽤 셌다. 정우가 움켜쥐고 있던 이불이 같이 잡아당겨질 정도였다.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다행히도. 정우가 문 열리는 소리에 화면을 끈 게 유일하게 제대로 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영은 이미 지난 몇 초 동안의 모든 걸 목격했다. 핸드폰 화면이 켜져 있을 때 본 것이다. 어떤 사진이었는지도 알 거다. 엄마의 수영복 사진이었고, 정우가 그걸 확대해서 보고 있었다는 걸.

소영이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정우를 바라봤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분노인지 충격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감정인지 정우로서는 알 수 없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정우가 들어본 엄마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날카로웠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밝은 톤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마치 낯선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

정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침도 삼킬 수 없었다. 그저 엄마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소영이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화면이 꺼져 있었지만 그녀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지르듯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잠금을 풀려는 듯했지만, 비밀번호를 몰랐다. 정우는 그걸 보고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대답 안 해?"

다시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더 높은 톤이었다. 정우는 겨우 입을 열었다.

"아, 아무것도..."

목소리가 갈라졌다. 완전히 망가진 목소리였다. 정우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소영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정우의 침대 위에. 그리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실망인가, 분노인가, 아니면 체념인가.

"다시는 그러지 마."

그 말 한마디를 던지고 소영은 몸을 돌렸다. 방 밖으로 나가려는 듯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등이 정우를 향한 채로, 어깨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정우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소영이 방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소영이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던졌다. 정우의 옆구리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다시는 그러지 마."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돌아섰다. 이번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발걸음이 단호했고, 문이 닫히는 소리도 분명했다. 복도 불빛이 다시 차단되면서 방 안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정우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엄마가 던진 핸드폰이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지만 그걸 치울 힘도 없었다. 얼굴이 뜨거웠고, 귀에서부터 목까지 화끈거렸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이불을 끌어올렸다. 얼굴까지 덮을 만큼 끌어올리고 몸을 웅크렸다. 공 모양처럼 말아져서 무릎을 가슴까지 당겼다. 이불 속은 어둡고 더웠지만 그게 더 안심됐다. 밖이 너무 밝았다. 엄마가 본 그 순간의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엄마의 표정이 자꾸 떠올랐다. 창백해졌다가 붉어지던 얼굴, 떨리던 입술, 날카로운 목소리. 평소의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정우는 그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잊고 싶지 않았다. 잊어야 한다는 죄책감과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불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엄마가 아직 복도에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거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아침까지 그렇게 있다가 정우가 나오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 건 아닐 거다. 엄마는 화가 났을 뿐이다. 실망했을 뿐이다. 내일 아침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할 거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가족들이 뭔가 잘못해도 크게 꾸짖지 않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모든 걸 용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정우는 직감했다. 엄마가 본 건 단순한 잘못이 아니었다. 엄마의 수영복 사진을 보고, 그것도 그런 목적으로 보고 있었던 아들의 모습은 절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불을 걷어내고 천장을 바라봤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창문으로 달빛이 조금 들어오고 있었지만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천장이 어디쯤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정우는 그곳을 응시했다. 하얗고 평평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해줬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릴 정도로 꽉 깨물었다. 그러면서 눈을 깜빡였다. 깜빡일 때마다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울면 모든 게 진짜가 되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이건 꿈이라고,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의 마지막 그 말이 귀에 맴돌았다.

"다시는 그러지 마."

다시는.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영원히 잊으라는 뜻일까. 정우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핸드폰이 옆에서 진동했다. 철수였다. 아마도 잠이 안 온다고 카톡을 보낸 모양이다. 정우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만 화면을 보지 않았다. 엄마의 비밀번호 요청이 떠오를까 봐 두려웠다. 아니면 엄마가 다시 들어올까 봐 더 두려웠다.

방 안은 고요했다. 복도에서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엄마도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집 전체가 잠든 듯 조용했다. 하지만 정우의 머릿속은 그렇지 않았다. 수백 개의 생각이 동시에 맴돌고 있었다. 그중 가장 선명한 건 엄마의 얼굴이었다. 평소의 부드러운 미소가 아닌, 창백하고 붉어지던 그 얼굴.

정우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는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면서. 하지만 알았다. 아침은 반드시 올 거고, 엄마를 마주해야 할 순간도 반드시 올 거라는 걸.

천장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이불을 다시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몸을 웅크리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눈을 뜬 채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다행이었다. 보이는 게 없으니 생각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애쓰면서.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만큼은 자꾸만 되살아났다. 정우는 그 목소리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 목소리는 이미 정우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버렸다.

Comments (0)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share your thoughts!

Sign In

Please sign in to continue.